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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공부/악기'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4.10.15 바로크 오보에"들"
  2. 2013.12.19 바로크 오보에 4
  3. 2010.07.14 바로크활 도착 10
  4. 2010.01.16 케이스 도착~~ 24
  5. 2010.01.11 아우디-뵈젠도르퍼 2
  6. 2009.12.18 A Guide to Period Instruments 4
  7. 2009.09.08 케이스를 질렀는데..... 6
  8. 2009.02.22 안드레아 아마티와 크레모나 제작자들
  9. 2009.02.22 안드레아 아마티 바이올린 연주 4
  10. 2009.02.22 현존하는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 (The Surviving Instruments of Andrea Amati) 2
  11. 2009.02.22 [번역] 현존하는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 4부
  12. 2009.02.22 [번역] 현존하는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 3부
  13. 2009.02.22 [번역] 현존하는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 2부
  14. 2009.02.22 [번역] 현존하는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 1부 2
  15. 2009.02.01 Chi Mei Collections
  16. 2009.01.15 [번역] Homage 해설 by James Ehnes 14
  17. 2009.01.14 풀턴 콜렉션의 악기들과 "Homage" by James Ehnes 9
  18. 2008.12.24 라센 찌간느
  19. 2008.10.10 야마하 오보에 211 5
  20. 2008.10.10 지윤이를 위한 플룻
  21. 2008.07.30 어포더블한 하드(?) 바이올린 케이스 7
  22. 2008.07.21 7/8 Violin by Ch J.B Collin-Mezin 10
  23. 2008.07.12 바이올린 활 - J. S. Finkel Bow 6
  24. 2008.05.16 우쿨렐레 구입! 11
  25. 2007.08.20 7/8 바이올린 사용기 7
  26. 2007.08.14 [번역] 무질서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괴짜
  27. 2007.05.30 [번역] 헷지펀드가 바이올린을 주제로 연주하다? - 파이낸셜 타임즈 기사 번역^^
  28. 2007.05.04 [스크랩] 타르티니의 활과 몇 가지 그림들
  29. 2007.03.15 [스크랩 & 번역] 바리톤... 4
  30. 2007.02.02 [스크랩 & 번역] Collector Dave!

조만간 내 손에 들어오게 될 오보에 두 대의 사진 + 현재 내 악기. 모양을 비교해보면 조금씩 다 다르다. 


먼저 첫번째 사진의 악기. 완성되려면 아직도 4달 정도 남았다. 이제 겨우 모양을 만들었다면서 제작자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그나마도 벨은 색깔 때문에 다시 만드려고 준비 중이라고 하심. 미학적인 문제가 없는 회양목을 찾아서 다시 만들어 보겠다고... 


에딘버러에 소장되어 있는 영국 제작자 Thomas Stanesby Senior 악기의 카피. 제작자는 스위스분이고 아래 사진은 몇가지 사용상의 편의를 위한 수정이 있는 모델이다. 남은 약 4달간은 소리의 톤과 발란스를 맞추는 작업을 계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보다 악기의 굴곡이 적다;;




그 다음 아래 악기는 폴란드 제작자가 만든 악기. 완성된지 약 1년 정도. 아들 Stanesby 오보에의 카피. 이 폴란드 제작자의 악기는 꽤 저렴한 가격인데 퀄리티는 일단 악기를 받고 테스트하고 난 후에 코멘트하겠음. ㅋㅋ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악기 모델이 조금 다르다 (제작자들이 정확히 카피를 만들었다는 가정 하에...)


Stanesby 부자에 대해서는 여기 아주 간략한 설명이 있다. 살짝 더 긴 설명은 요기




마지막으로 요건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현재 내 오보에 독일 Denner 모델. 윗관이 별로 통통하지가 않아서 리코더 만들다가 남은 나무로 만든 건 아닐까 우스개소리를 한 적이 있다. 이제 더이상 오보에를 만들지 않는 Moeck사의 악기.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고민인 리드 잡설 약간 - 


사실 오보에라는 악기에 있어서 악기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리드인데.... 모던 오보에도 케인에 따라 튜브에 따라 쉐이핑에 따라, 심지어 칼질 한 두번에 따라 소리가 확확 바뀌지만, 바로크 오보에는 일단 리드의 모양새부터 종류가 터무니 없이 많은 것 같다. 튜브의 길이도 제각각이고 케인의 쉐이프도 확연히 다르다. 아예 리드 만드는 스탠다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어떤 재료들을 골라야 하는지부터 고민인데다가 내 악기와 맞는 리드가 어떤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제작자가 처음에 보내준 리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게다가 독일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글님의 독-영 번역에 의존해서 쇼핑을 하는 나로서는...ㅠㅠ


그나저나... 선생님이 깍아 주신 리드를 계속 사용하다가, 내가 혼자 야매(ㅡㅡ)로 리드를 만들었는데 황당한 소리가 나서 던져 두었다가 그래도 아쉬워 생각날 때마다 한두번씩 만져 주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꽤 괜찮은 소리가 나는 리드가 되어 있었다. 자신감을 얻어서 두 개를 더 만들어 놓았는데 역시 황당한 소리와 터무니 없는 음정으로 좌절 중이다. 게다가 새로 만든 두 개는 먼저 만든 리드와 모양이 또 다르다. 사실 그 두개도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서로 다른 튜브를 사용해서 전혀 다른 모양이다. (이런 참신한 실험정신 같으니라구...) 그래도 혹시 시간을 두고 만지다 보면 또 괜찮은 소리가 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살짝 가져 본다. 


만들어 놓은 리드 사진은 찍어 놓은게 없고...; 만들기 시작한 날 찍어 놓은 사진은 아래. 


이건 튜브들. 왼쪽의 두개는 결합하여 하나의 리드가 된다. 오른 쪽 두개는 각각 하나씩 리드가 되는데, 맨 오른쪽은 실을 감기 전의 모습.



구입해 놓은 shaped cane을 철사로 튜브에 고정하는 중. 이 상태로 하루 이상 말려둔다. 


다음 단계는 실로 있는 힘껏 묶어서 고정시키고 칼로 두께를 맞추어 모양을 만들면 끝.... 이기는 하나 이 작업이 무척 고난이도이고 맘에 드는 결과가 나오기는 극히 어렵다는 것이 문제. ㅠㅠ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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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로크 오보에. 작년 가을에 구입하고 또 한참을 묵혀 두었다가 최근에 다시 꺼내어 불어 보고 있다. 


리코더로 유명한 Moeck사 제품. (Moeck에서 이제 더이상은 바로크 오보에를 만들지 않는다고..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바로크 목관악기 판매를 해왔으나, 아무래도 시장이 너무 좁다 보니 도저히 더이상 운영이 불가능했던 것 같다.)


악기설명:

Maracaibo Boxwood, oiled.

Jacob Denner (Nuremberg 1681-1735) copy

a=415 Hz.
Design by Harry A. Vas Dias, Decatur, Georgia, USA.


아주 가볍고 (로레 오보에 들다가 이 악기를 들면 너무 가벼워서 이상하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키는 2개가 붙어 있다.  한국-EU FTA 덕에 무관세로 들여왔다. 가격은 모던 오보에에 비하면 소위 '껌값' 수준.



요건 처음 도착했을 때의 사진. 이 사진을 보니 키 색깔이 정말 많이 변했다. 좀 닦아 주어야 할 듯... (뭘로 닦아야 반짝거리게 될까요?)



1년 이상을 묵혔다가 꺼냈더니 리드가 영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별로 많이 불지도 않았는데;;; 일단 급한대로 미국에 어느 리드 깍는 아줌마에게 리드를 주문을 했는데, 이 분이 도무지 리드 만들어 보낼 생각을 안한다. 주문한 지 벌써 한 달도 훌쩍 넘어가는데....


그래서 결국 며칠 전 케인과 스테플을 독일에서 대량 구매. 여기도 좀 오래 걸리지 않을까 했는데, 기나긴 성탄절과 연말 휴가를 앞두고 이 독일가게에서는 광속으로 배송을 시작한 듯. 올해 안에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만드는 법을 전혀 모르는데... 과연 인터넷과 유튜브의 도움으로 리드를 깍을 수 있을 지.



아래 사진에서 추측할 수 있겠지만 바로크 오보에의 운지는 무척 단순하다. 리코더와 비슷한 느낌.


이 사진은 모던 오보에 - 2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내 로레골드 - 와의 비교 샷.


모던 오보에는 키가 많고 더 무겁고 더 강한 압력으로 불어야 하기 때문에 언뜻 바로크 오보에 보다 훨씬 더 연주하기가 까다로울 것으로 보이지만, 바로크 오보에를 제대로 배워 보지 못한 나로서는 바로크 오보에야 말로 도무지 어떻게 불어야 할 지 모르겠는 악기인 것 같다. 더구나 그저 키를 누르면 한 옥타브 위의 음을 낼 수 있는 모던 오보에와는 달리 순전히 부는 방법을 달리하여 옥타브 위의 음을 내야 하는 바로크 오보에는 그야말로 연주자 자신의 목소리처럼 머리 속으로 음을 정확하게 생각하고 불어야만 정확한 음정을 낼 수 있는 악기인 듯 하다.



벨의 모양 비교.


리드 비교. 그냥 리드만 찍은 사진은 다음 기회에 올리기로 하고.... 일단 모던 오보에의 리드는 코르크로 스테플 위를 둘러 싸기 때문에 그야 말로 바람이 샐 틈이 없게 된다. 케인의 모양도 더 폭이 좁고 케인의 두께도 더 얇은 것이 보통이다. 리드의 길이 자체도 훨씬 짧다.


반면 바로크 오보에는 폭이 넓고, 스테플 위를 실로 감싸고 있다. (바순처럼... 그러나 간혹 코르크로 덮여 있는 스테플도 있긴 하다) 케인의 두께도 좀 있고, 힘을 더 받기 때문에 와이어도 더 굵은 것을 쓴다. 




아래 리드 케이스는 모던 오보에용. 하나만 빼놓고는 다 내가 묶고 깍은 것이긴 한데... 저 많은 리드 중 쓸만한 놈은 2-3개가 채 안되는 것 같다. 아직 깍지 않은 리드 두 개는 이번 주에 깍을 예정.



(뜬금 없이 바로크 오보에 이야기 하다가 모던 오보에 리드로 끝맺음을.....ㅡㅡ;; 시간이 나면 리드 메이킹에 관한 포스트도 하나 올릴 예정.)


바로크 오보에 연습은 리드가 도착하면 또는 바로크 오보에 리드를 하나 성공적으로 깍게 되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다. 운지도 어색하고 부는 방법도 여전히 아리송하지만, 한 줄기로 공간을 가로지르는 듯한 모던 오보에의 음색과는 다른, 고즈넉하고 부드럽고 때로는 익살스러운 바로크 오보에 연주를 언젠가는 비슷하게라도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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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도 그만두고, 연습도 팽개치고 있는 와중에.... 바로크 앙상블이 드디어 시작을 해버렸다. 첫 연습은 놀러 가느라 못가고;; 두번째 연습부터 참가했는데, 강선생님과의 앙상블 연습이 매우 즐겁다. 문제는 레슨도 연습도 안하고 푹~~ 쉬고 있느라 같이 엉망인 내 실력..ㅠㅠ

그건 그렇고, 앙상블에서 바로크활을 써봐도 괜찮겠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대국산 활을 하나 사봤다. 대국산 활을 미국가게에서 사는 쎈스;;; 재질은 페르남부코이나 가격은 세관을 무사통과할 만큼 저렴하다. 미국 독립기념일 주말을 지나...  한 보름 정도 걸려서 오늘 배송 완료. 

일단, 집에 오는 모든 택배를 검열해 주시는 우리집 냥님들.. 활에서 무슨 냄새가 난다는 것인지... 계속 코를 들이 대고 있었다.


고양이 제거(?) 후 찍은 사진. 아직 비닐로 포장이 된 상태.








들고 찍은 활 팁부분. 모던활처럼 상아로 된 팁부분이 없다.

이건 모던활과의 비교샷. 찬조 출연은 핑켈 실버활;;

또 몰려 드는 냥이들;;;;


팁쪽 끝부분 비교.


프로그쪽 끝부분 비교


활털에 송진을 열심히 바르고... 모던활처럼 끝부분을 잡고 ㅠㅠ (좀 윗부분을 잡아 보려고 했으나 영... 쉽지가 않다) 조금 연습을 해보았다. 생각보다 탄력이 있지만 확실히 (활대의 모양 때문인지) 가벼운 소리가 난다. 일단 활 무게도 꽤 가볍고. 스네이크 우드로 만든 활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음 연습시간에 가져가 봐야지^^;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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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tracking을 해보니 한국에 도착하고 통관을 했다고 나왔었다. 바로 주말이라서 월요일에 오겠거니 했는데, 아침에 앙상블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커다란 소포가.....!!!

느려터진 배송 때문에 3달을 넘겨 기다렸다가 도무지 못 미더워서 캔슬하고 다시 주문한 케이스다. 이번엔 있을 만한 샾에 재고가 있냐고 확인을 하고 주문을 했다. 재고가 하나 있는데 블랙/그린이라고.... 내가 원한 Sable/Ivory 색상은 주문하면 또 두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두달이 세달되고 네달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냥 그걸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열흘만에 도착.

일단 무지 가볍다. 2.4KG이라고 되어 있는데 들어 보니 지금 케이스랑 별 차이가 없다. 악기를 넣고 들어도 가뿐하다.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주문한 모델인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일단 케이스 겉 모습. 박스를 뜯자마자 치로가 뒹굴어서 벌써 냥이 털이 더덕더덕....;;

악기를 넣기 전 모습. 나름 써티가 들어있었는데, 역시 안팔린 재고라서 그런지..... 제작일자가 6개월 전이다.;;;; 재고라고 할인도 안해줬으면서...;


뚜껑을 열자마자 빛의 속도로 달려온 치로. 스크래치를 하려고 하길래 기겁을 하고 내쫓았더니 얌전히 그냥 들어 앉아 있기만 했다.



보리까지 다가와서 육탄적을....; 서로 제 집이라고 싸우는 황당한 전개가....

모두 쫓아내고 진짜 주인을 넣어봤다. 생각보다 활 넣는 곳이 짧아서 활이 간신히 들어간다. 내 활들이 다 긴 것도 아닌데....;;;

수납함은 보기보다 넓다.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본뮤지카가 들어간다. 저 휴미스텟은 이제 별로 필요 없을 듯^^;

쫓겨난 녀석들 중 하나가 여전히 케이스 근처를 배회 중...

이불 덮은 악기.

요건 케이스가 담겨온 허접한 박스. 뽁뽁이가 잔뜩 들어있기는 한데, 그냥 케이스 옆에 들어 있었다. 케이스 보호 목적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 사은품으로 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색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것 같다. 블랙커버는 아주 까맣지 않아서 맘에 드는데, 안감은 그냥 그렇다. 그래도 녹색이 무난하긴 하니까.... 별 생각 없이 쓰면 될 듯. 질리지는 않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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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나온 것이긴 하지만....

아우디가 100주년 기념으로 디자인한 그랜드피아노. 작년 7월에 공개되었었다. 뵈젠도르퍼가 제작했다. 다리와 뚜껑의 디자인이 특이하다. 건반 양쪽에 일반적인 피아노에서 보이는 턱도 없고... 심플하고 모던하면서도 피아노 특유의 곡선도 살아있다.

가격은...... 100,000 유로라고.....;


Audi Design Creates Grand Piano

Audi Design Creates Grand Piano
Audi Design Creates Grand Piano
Audi Design Creates Grand Piano
Audi Design Creates Grand Piano
Audi Design Creates Grand Piano
Audi Design Creates Grand Piano


덧.... 아우디 말고도 뵈젠도르퍼 피아노를 디자인한 회사들이 꽤 된다.

포르쉐, 크라이슬러, 스와롭스키 등등... 구경은 다음 링크에서...

http://www.boesendorfer.com/en/audi.html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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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클 신보소식에서 보고 찾아서 구입했다.

국내에서도 파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해외에 주문을 했더니 약 10일만에 받을 수 있었다.

조금 전에 퇴근해서 쭉 살펴 보았는데 불어, 독어, 영어로 된 해설서 한권과 샘플음원이 들어 있는 CD 한권. 두 권이 양쪽으로 들어 있다.

 

일단 그럴 듯 해보이는데... 읽어 보고, 들어 보고 난 후에 평가를....

 

 

박스와 내용물

 

안의 그림들

 

책....

 

 

CD들이 들어있는 책

 

 

내부 박스 그림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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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하고 케이스를 질렀는데....

좀 전에 판매처에서 이메일이 왔다. 쉽핑하는데까지만 3개월이 걸릴거라나...;;;; 주문 받고 재료부터 하나하나 준비하기 시작하나 보다. 악기도 3개월 정도만에 만드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케이스도 그렇게 만드는 건가..ㅡㅡ;;; 통나무를 구해서 안을 긁어내 만드는 케이스도 아니구..

지금 가지고 다니는 염가케이스가 상당히 망가져 가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 당장 케이스가 필요하긴 한데... 3개월을 버티려면 옛날에 쓰던 빈터 삼각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ㅠㅠ 악기보호가 전혀 안되는뎅...ㅡㅜ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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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는 것이겠지만....

출처Craig Purdy교수의 웹사이트. 다양한 자료들이 상당히 많으니 한 번 방문해 볼만하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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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아마티의 샤를9세 세트 바이올린으로 연주된 Matteis와 Biber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연주자는 Simon Standage.
2006년 4월에 Royal Academy of Music에서 녹음되었다.



아래 샘플로 나온 클립은 2번째 트랙에 수록되어 있는 Matteis의 Passaggio Rotto.



이 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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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렌스 위튼 II (Laurence C. Witten II)
October 1982, Early Music Vol. 10, No. 4, pp 487-494 (출처 링크)

  1. 4편의 글로 쪼개어 올립니다.
  2. 원래는 매우 작은 글씨 7장 정도 되는 아티클입니다. 원래 Early Music은 유료이긴 한데...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수업시간에 읽을 아티클로 쓰면서 그 대학 사이트에 올려 놓은 모양입니다. 게다가 일단은 27년 전의 글이고.... 그냥 번역합니다.;;
  3. 안드레아 아마티에 관한 글로는 아주 많이 인용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길지 않으면서도 안드레아 아마티에 대한 개론적인 내용으로는적합한 듯 합니다. 안드레아 아마티 악기가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글이 길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4. 사진자료는 몇 개되지 않지만 원문을 참고하셔도 되고, 사우스 다코다 대학의 내셔널 뮤직 뮤지엄 사이트를 참고하셔도 되겠습니다. USD사이트의 샤를9세 사진은 정말 볼만하지요.
  5. "King"에 관한 동영상은 유튜브에도 있는데, 어떻게 사이즈가 축소되어졌는지, 또 원래의 악기대로 만들어 보는 과정에 관한 내용이지요. 7분이 안되는 짧은 영상입니다.
  6. 이 글을 쓴 위튼과 위튼 콜렉션은.. 이 설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1) 주석은 번역을 한 것도 있고 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다지 번역을 할 필요가 없어 보여서요^^

(주2) 완전한 초벌번역입니다. 즉, 엉망 진창 비문에 오타 투성이라는 말이지요..;;; 추후에도 수정을 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ㅡㅡ;; 읽으시는 분들이 양해해 주시길...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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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위튼 II (Laurence C. Witten II),

October 1982, Early Music Vol. 10, No. 4, pp 487-494 (출처 링크)

안드레아 아마티 악기의 음색의 특성 (Tonal properties of the instruments of Andrea Amati)

최근에는 몇 명 되지 않는 상급 연주자들이 단지 한 대 또는 두 대 정도 안드레아 아마티 악기들만을 정기적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이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소리는 오늘날 학자들이나 음악가들 그리고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그러나, 3대의 가장 중요한 큰 바이올린들 (II-1~3), 유명한 오케스트라에서 최근까지 독주악기로 연주된 비올라 (III-3) 그리고 두 대의 가장 유명한 첼로들 (IV-1과 5)는 모두 뉴욕-코네티컷 지방에서 지난 25년간 숙련된 청중들 앞에서 그들의 음색의 특성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연주되었었다. 여전히 들어 보아야 하는 것은 안드레아의 작은 바이올린들이지만, 마눅 파리키안 (Manoug Parikian)은 최근에 칼라일의 튈리 하우스 박물관 (Tullie House Museum)에서 그 중 하나를 연주하였고, 나에게 무척 만족하였다는 말을 했다. 

비록 바이올린의 음색에 대한 설명에는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표준은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작은 바이올린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가 들어 보았고 그것도 여러 번 들었던 이들 악기의 사운드에 대한 나의 설명이 적어도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기를 희망한다. 첫번째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악기들 모두가 ‘크레모나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힘, 음역 전체의 균등한 배분, 유연성 그리고 크레모나 현악기의 각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감각적인 음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나는 3가지 사이즈 모두가 사람들이 그런 고악기들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은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후계자들 – 그의 아들들인 안토니와와 지롤라모, 지롤라모의 아들인 니콜라, 니콜라의 아들인 지롤라모 2세, 스트라디바리에 이르는 그리고 니콜라의 제자들과 모방자들 – 에 의해 만들어진 크레모나 악기들은 안드레아의 걸작들보다 더 폭넓거나 더 우월한 음색적인 특징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 라 보르드 (La Borde)가 2세기 전에, 악기들이 만들어진 지 2세기 후에, 말한 것은 오늘날에도 진실이다: 'les meilleurs Violons que nous ayons encore, sont ceux que Charles IX, Roi de France, fit faire a Cremone par le fameux Amati, & que ce sont encore les plus beaux modeles possibles' (우리가 지금껏 가진 가장 좋은 바이올린들은 프랑스왕 샤를 9세가 가졌던, 크레모나에서 유명한 아마티에 의하여 제작된 악기들이고, 그것들은 여전히 가장 가능한 아름다운 악기들이다)[각주:1].

안드레아의 악기들은 대부분의 브레시아 악기들과 쥬제페 과르네리 델 제수의 악기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적인 바리톤적인 어두움이나, 1690년 이후의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들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뚫고 나가는 듯한 밝음 – 얼마간의 날카로움 또는 신랄함 -  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날카로움은 안드레아 아마티 음질의 주요한 특징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안드레아의 악기들이 결정적인 공격을 할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거나, 음이 스펀지같거나 퍼져버리거나 무르거나 단지 달콤하기만 하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남성적’, ‘고귀한’, ‘힘있는’, ‘따뜻한’, 그리고 ’뛰어난’ 같은 형용사들이 생각난다. 나의 견해로는, 비올라의 사운드는 내가 들어본 어느 악기도 다 똑같다. 모든 현들이 다 파워풀하고, 풍부하며, C현에서는 잊을 수 없는 나무의 질감을 가지고 있다. 1959년 12월에 스트라드지는 몇 년 후에 우리의 콜렉션이 된 장식없는 첼로의 소리를 ‘웅대한’이라고 묘사했다. 우리는 ‘King’ 첼로의 음색이 더 훌륭하다고 느낀다.

안드레아의 악기들이 크레모나에서 – 확장한다면 전 유럽에서 – 적어도 세기 동안은 본이 될 만한 음색적인 표준을 세웠다라고 말하는 것은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시기 동안 그것에 필적할 만하거나 수준을 넘는 일은 많지 않았다. 훗날 제작자들은 약간 다른 음색의 특징을 찾고 개발했지만, 그들이 도달한 사운드가 안드레아의 것보다 우월한 것이라는 명제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안드레아가 바이올린족 악기를 발전시킨 것에 좀 더 큰 결과는 그 악기들이 널리 퍼져나갔다는 점에서 명백하다. 그가 모던한 형태, 크기와 음색의 특징을 부여한 악기들은 그 이후로 청중들을 사로 잡았고, 르네상스 이래로 음악문화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그가 창조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소리가 독주악기로나 앙상블 악기로나 모두 그의 사후에 서양음악에서 지배적인 것이 되어왔다고 말해도 아마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들 중에서 가장 다양하고도 세련된 이 악기들의 소리를, 이러한 악기들에 대해 개발된 문헌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생각해내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안드레아의 악기들로 – 크레모나, 옥스포드, 또는 뉴욕에서 - 연주하는 콘서트는 그의 서양음악에 대한 4세기 동안의 유례없는 공헌을 절절하게 축하하면서 밝게 빛날 것이다. 안드레아의 악기들 중 적어도 6대가 보여지는 전시회가 1982년 10월 9일부터 18일까지 크레모나의 팔라조 코뮤날레 (Palazzo Comunale)에서 계획되어 있다. 안드레아 모스코니의 감독 하에 이 전시는 1789년 혁명 때 프랑스 궁정악기 세트가 흩어진 이후로 안드레아 악기들이 가장 큰 규모로 한 곳에 모이게 되는 행사가 될 것이다.

  1. La Borde, loc cit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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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위튼 II (Laurence C. Witten II),
October 1982, Early Music Vol. 10, No. 4, pp 487-494

안드레아 아마티의 현존하는 악기들에 대한 논평 (Remarks on the surviving instruments of Andrea Amati) 

위의 목록에서 볼 수 있듯이,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은 3가지 그룹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

1 프랑스 샤를 9세를 위하여 만들어진 세트에 속한 악기들로 2대의 작은 바이올린(Oxford and Carlisle), 한 대의 큰 바이올린 (Cremona), 한 대의 테너 비올라 (Oxford), 그리고 4대의 첼로 (all in private collections)이다. 이 세트가 몇 대였는지 언제 제작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악기에 문장이 장식되어 있고 이전 군주들의 문장은 후계자들이 좀처럼 사용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또 이 세트가 샤를 9세가 사망한 후에 도착했었다면 아마도 새 군주인 앙리 3세를 위하여 다시 장식되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샤를 9세의 생전 (1574년 5월 30일에 사망)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이 악기세트가 프랑스 궁정에서 수백마일이나 떨어진, 상대적으로 작은 중심지였던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지게 된 일련의 상황들에 관하여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앙리 2세의 미망인이며 샤를의 어머니였던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지배했던 궁정의 확실한 이탈리아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탈리아 음악가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그들에게 잘 알려진 제작자에게 악기를 주문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초기의 출판문헌에서 제시되었듯이, 아마도 발다사르 드 벨지오이오소 (Baldassare de Belgioioso, 1587년 경 사망)이 중간에 있었을 것이다. 이 음악가는 통설로는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하는데, 1555년부터 카트린느 드 메디치를 위하여 프랑스 궁정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1582년에는 바이올린들이 아마 사용되었을 작품인 발레 코미크 드 라 루안느 (comique de la Royne)를 출판했다. 이 세트에 관한 간단한 언급은 쟝 벵자맹 드 라 보르드 (Jean-Benjamin de La Borde)의 Essai sur la musique (Paris, 1780)에 나온다[각주:1]. 안드레아 아마티는 아베 세바스티앙-앙드레 시비르 (Abbe Sebastien-Andre Sibire)의 뛰어난 소책자인 La chelonomie (Paris, 1806)에서 바로 이 악기세트의 제작자로 칭해진다. 이 책의 연구에 의하면, 시비르가 정보 대부분을 그의 동시대인이며 위대한 프랑스의 제작자인 니콜라스 루포 (Nicolas Lupot, 1758-1824)로부터 얻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루포의 수리 라벨이 현재 또는 전에 크레모나의 큰 바이올린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프랑스혁명 시기 왕궁으로부터 악기들이 옮겨진 이후에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 중 적어도 몇 대를 검사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샤를 9세 세트는 의심할 바 없이 안드레아 아마티 또는 초기 현악기 제작자들의 현존 악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이것은 안드레아의 악기들 중에서 4 가지 종률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 유일한 그룹이며 8대나 되어 가장 수가 많다. 이 악기들은 르네상스의 위대한 궁정을 위하여 준비된 것들이며 장인으로서의 아름다운 솜씨, 음색의 특질 그리고 풍부한 장식은 비할 만하거나 뛰어넘을 만한 악기를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다. 

2 안드레아 아마티의 두번째 장식 악기 세트는 프랑스 국왕을 위하여 준비된 세트만큼 아름답다. 아마도 연구를 더 진행하면 이 세트가 어떤 후원자를 위하여 만들어지고 장식되어졌는지가 밝혀질 것이겠지만, 이탈리아의 공작급 귀족 가문일 것이다. 현재에는 오로지 3대의 악기만이 알려져 있고, 모두 개인소유이다. 두 대의 큰 바이올린과 테너사이즈에서 크기가 줄여진 한 대의 비올라가 그것이다. 이 세트에 작은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은 아직 나타난 적이 없다. 

3 장식없는 악기들은 한 대의 큰 바이올린, 두 대의 작은 바이올린, 한 대의 비올라 그리고 한 대의 첼로이다. 적어도 이 악기들 중 몇 대는 아마 피렌체의 메디치를 위하여 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비올라는 메디치가와 관련이 있는 – 약간 희미하게 – 브랜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드레아 아마티의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악기 하나는 1700년에 그 해의 익명의 재고목록에 따르면 메디치 궁정의 소장품에 속해 있었다[각주:2].

팔로 연주하는
(a braccio) 7현의 작은 리라는 전나무로 된 앞판, 메이플로 된 넥, 테일피스, 브릿지, 옆판, 뒷판과 어울리는 펙과 핑거보드와 테일피스에는 a mastacciolo [? 다이아몬드 모양의 마름모꼴]인 흑백의 끈이 있었고 사방의 가장자리에는 비슷한 퍼플링이 앞판과 뒷판 모두에 있었으며, 안쪽에 붙여진 종이조각에는 진사로 적혀진 라벨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Andrea Amati in Cremona 1573'라고 적혀 있었다. 대리속 무늬의 결이 있는 나무활 [즉, 아마도 스네이크 우드]에는 프로그에 하트모양의 디자인이 있었으며 오래된 포플라 케이스에는 두 개의 후크와 구멍이 있었다. 

붉은 잉크로 적힌 라벨은 아마 위의 I-3에서 언급된 작은 바이올린에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마지막 25년과 19세기 초에 가장 위대한 현악기 수집가였던 이그나티오 알레싼드로 코지오 디 살라부에 백작 (Count Ignazio Alessandro Cozio di Salabue)은 안드레아 아마티가 제작한 진품 악기들을 만나기 위해 많은 시간동안 결연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는 원래는 리라였었을 ‘비올라’와 그가 ‘레벡’이라고 묘사한, 당시에는 안드레아가 만든 것으로 여겨졌던 3현 악기를 보았다. 그의 유명한 카르테지오 (Carteggio)에서 코지오는 그림으로 묘사하고 몇 가지 자세한 서술도 했다[각주:3]. 큰 ‘비올라’는 코너가 두 개 밖에 없었고 밑의 안쪽으로 구부러진 립을 가지고 있었는데, 브레시아 악기와 비슷했고 소문에 의하면 원래는 아마도 리라였을 브레시아 악기였을 것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어느 것도 정체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오리지널 헤드가 남아 있지 않다). 사운드홀은 코지오의 스케치에서도 크레모나의 것이라기 보다는 더 브레시아 (또는 베니스의?) 악기처럼 보이고, 악기는 가스파로의 라벨을 달고 있다.

이 것은 메디치의 리라였을까? 그것은 매우 의심스럽고, 코지오가 인용한 카를로 만테가자 (Carlo Mantegazza)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아 아마티의 작품이라는 것은 심지어 더 의심스럽다. 이 존경할 만한 수집가가 안드레아 아마티의 바이올린족의 악기를 과연 만날 수 있었는지는 결코 확실하지 않다. 어쨌거나, 메디치의 리라 다 브라치오는 영영 잃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Bartolomeo Cristofori)가 수집품의 또다른 품목을 추가한 1716년에 이미 메디치가의 관할을 벗어났다[각주:4]. 그는 아마티가의 다른 제작자들과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 형태의 몇몇 악기들에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들은 아니다. 내 의견으로는 위튼 콜렉션의 큰 바이올린과 이전에 우리가 소유했던 첼로는 아마도 다른 악기들보다는 이른 시기의 작품인 것 같다. 그들의 독특한 f홀은 더 좁고 더 똑바로 세워져 있으며 퍼플링은 좁고 다른 악기들보다는 덜 섬세하다.

안드레아의 현존 악기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독특한 점은 아마도 나무의 선택일 것인데 이는 알려진 모든 악기에서 실질적으로 동일하다. 윤곽과 아칭 프로그램은 매우 모던하고, f홀 패턴은 독창적이어서 안드레아의 사후에 그의 아들들에 의하여 더 전형적인 모던한 성격의 디자인으로 좀 빨리 변형되었다. 멋진 스크롤은, 슬프게도 몇 개 남아 있지 않다. S. F. 사코니 (S. F. Sacconi), 렘버트 벌리처 (Rembert Wurlitzer), 다리오 다틸리 (Dario d'Attili)와 다른 전문가들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스크롤과 4세대 전의 안드레아의 공방에서 나온 스크롤들  간의 디자인의 강한 유사성에 대해 언급했었다. 이 화려하게 디자인되고 조각된 스크롤의 중요성은 그 모든 하나하나의 특성이 그 후의 바이올린 제작자 세대들 모두에게 받아들여졌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작은 크기의 바이올린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도 왜 두 가지 크기의 바이올린이 있었는지, 또 그들의 피치가 서로 달랐는지에 대하여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띄게 작은 크기의 바이올린들 - 매우 자주 342mm이고 안드레아 아마티의 패턴- 은 크레모나에서, 다른 많은 제작의 중심지들에서 이탈리아 바이올린 제작자들에 의하여 안드레아의 시대로부터 18세기에도 쭉 만들어졌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안드레아 아마티의 4가지 크기의 바이올린 패턴은 수 세기에 걸친 사소한 수정들이 있기는 하지만, 세계표준이 되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온 그의 몇 대의 악기들에서 발견되는 디자인이 오늘날에도 많은 생산자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재해석되어 질 뿐만 아니라, 4세기보다 더 이전에 그의 공방에서 제작된 놀라운 악기들이 오늘날의 가장 까다로운 조건의 연주회에서도 그 악기들의 소리가 다른 어느 제작자의 악기들과도 성공적으로 겨룰 수 있을 만한 힘과 음질을 가지고 연주되고 있다.

  1. Vol. 1, p.358 [본문으로]
  2. Florence, Archivio di Stato, Guardaroba Medicea, no.1117; published in V. Gai, Gli strumenti musicali della corte medicea e il Museo del Conservatorio 'Luigi Cherubini' di Firenze (Florence, 1969) [본문으로]
  3. Transcr. R. Bacchetta, ed. G. Iviglia (Milan, 1950), p.13 [본문으로]
  4. Transcr. F. Soldi in Atti dell'accademie del reale istituto musicale di Firenze, 12 (1874), pp. 19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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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위튼 II (Laurence C. Witten II),

October 1982, Early Music Vol. 10, No. 4, pp 487-494

안드레아 아마티의 현존 악기 목록 (List of surviving instruments of Andrea Amati)

I. 작은 바이올린들 (Small violins)

1 작은 바이올린, 342mm. 1560년에서 1574년 사망 시까지, 모왕, 까뜨린느 드 메디치 (Catherine de' Medici)의 섭정 하에서 집권했던 프랑스의 샤를 9세 궁정을 위하여 제작된 악기 세트의 하나이다. 이 세트에 속한 악기라고 알려져 있는 악기들은 모두 왕의 제명과 문장이 그려져 있고 금박이 되어 있다. 가운데 바우트의 옆판에는 대문자 왕관이 쓰여진 K (Karolus)가 금색으로 쓰여져 있고, 제명인 'PIETATE ET IVSTITIA'도 금색으로 옆판을 둘러 쓰여져 있으며, 뒷판에는 금박으로 fleurs-de-lis (프랑스 왕가를 상징하는 붓꽃)과 추가로 2개의 왕관이 둘러진 K, 'Pietate' 제명과 함께 기둥, 그리고 날아가는 작은 천사 (putti)를 포함한 구조에 둘러싸인 정의의 여신의 모습이 있다. 펙박스와 스크롤은 검은 칠과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다. 작은 바이올린은 상당히 낡아 있으나, 그 이외의 상태는 좋은 편이다. 라벨의 윗 줄은 해독하기 어렵고 두번째 줄에는 보이든 (Boyden)에 따르면, 'Cremona MDLXIV'라고 쓰여 있으나 그는 이 라벨이 인쇄된 것인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셋업은 모던이다 (원래의 넥과 피팅은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어느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에서도 남아 있지 않다). Oxford, Ashmolean Museum, bequest of Arthur F. Hill, 1939; D. Boyden, Catalogue of the Hill Collection of Musical Instruments (Oxford, 1969), no. 10. 

2 작은 바이올린, 342mm. 샤를 9세 세트에 속한 또 다른 장식 바이올린으로 이것은 실질적으로 아쉬몰리언 (Ashmolean) 소장품과 동일한 것이다. 나는 이 바이올린을 본 적이 없고, 보존상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악기는 상당히 최근까지 성공적으로 연주되었었다 (아래의 음색의 특징에 관한 부분을 보라). Carlisle, Tullie House Museum; The Galpin Society 21st Anniversary Exhibition, European Musical Instruments (London, 1967) [catalogue], no.571. 

3 작은 바이올린, 약 342mm. 매우 훌륭한 상태의 장식없는 악기로 붉은색 잉크로 손으로 쓰여진 라벨 (아마도 진품은 아닐 듯한)을 달고 있으며 1564년으로 되어 있다. 나는 1960년대에 이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검사해볼 기회를 가졌었다. Great Missenden, Bucks., collection of Desmond Hill. 

4 작은 바이올린, 원래는 약 342mm, 354mm로 확대됨. 이 장식없는 악기는 19세기에 변형되어졌다. 앞판과 뒷판 모두 퍼플링 바로 안쪽이 잘려졌고, 더블 퍼플링으로 된 새로운 경계가 덧붙여져 악기를 “풀 사이즈”로 확대시켰으며, 옆판은 확대되고 그에 맞게 다시 구부려졌다. 스크롤은 원래의 것이 아니다. Connecticut, Witten family collection. 

II 큰 바이올린들 (Large violins)

1 장식된 큰 바이올린, 354mm, 샤를 9세의 세트에 속함. 비록 이 바이올린은 상당히 낡았으나, 장식의 주요한 특징들은 구별할 만하고 놀라운 음색의 품질을 지니고 있다. 이 악기는 파리의 니콜라스 루포 (Nicolas Lupot, Paris)의 수리 라벨을 가졌었고 아마도 아직 가지고 있을 것이다. Cremona, Palazzo Comunale, formerly New York, collection of Henry Hottinger; illustrations, some in colour, in M. Tanzi and A. Mosconi, Il Palazzo Comunale e le sue collezioni d'arte (Milan, 1981), and The Henry Hottinger Collection (Rembert Wurlitzer: New York, 1967), pl.I. 

2 장식된 큰 바이올린, 354mm,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후작을 위하여 제작된 세트에 속함. 장식의 아웃라인은 샤를 9세 세트를 위한 장식과 비슷하나 옆판을 둘러 금색 글자로 'QVO VNICO PROPVGNACVLO STAT STABITQ(ue) RELIGIO'라는 제명을 달고 있고 이 제명은 제명사전에는 없는 것이다. 뒷판에는 fleurs-de-lis 이외에, 몇 가지 글자가 암호처럼 엉켜 있고 같은 제명이 반복적으로 쓰여진 화환으로 둘러싸여 있다. 상당히 낡았지만 이 악기는 좋은 상태이고 음색도 뛰어나다. 라벨은 없다. New York, private collection. Ruggiero Ricci가 음반에서 이 악기를 연주했다. The Glory of Cremona, Decca DXE 179, side 1, band 1. 

3 장식된 큰 바이올린, 354mm, 역시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후작을 위하여 제작된 세트에 속하고 위의 II-2와 아래 III-2의 악기들과 같은 장식을 가지고 있다. 이 악기는 아마도 남아 있는 큰 사이즈 바이올린들 중에서 가장 덜 사용된 것일 것이다. 앞판과 뒷판의 가장자리는 더블로 되어 있지 않고 뒷판은 엣지 쪽으로 두드러진 홈이 있어서 초기 아마티 공방 (그림 1) 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이 악기도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비껴가지는 못했다. 그림과 금박의 대부분이 어느 시점에서 고의적으로 제거되어졌는데 아마도 원래의 소유권을 감추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 같다. 그러나 앞판에는 흔적만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뒷판과 립은 원래의 바니쉬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그림 2). 스크롤은 아마 원래의 것이 아닐 것이며 라벨은 없다. 충실한 바로크 아웃라인과 길고 구부러진 코너 – 다른 알려진 악기들은 훨씬 더 닳아 있다 – 는 초기의 바이올린으로는 놀라운 것이다. 우리는 니콜라 아마티, 안드레아 과르네리, 지오반니 바티스타 로제리와 로제리의 아들인 피에트로 지아코모와 같은 기술적인 장인들을 훈련시킨 훗날의 아마티의 작품들에서 이런 점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될 것이긴 하다. 이 악기는 뛰어나고 매우 힘찬 음색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런던의 존과 아서 비어 (John & Arthur Beare)가 다시 발견하였다. Connecticut, Witten family collection. 

4 장식없는, 위의 II- 1~3 보다 좁고 약간 긴 (355- 6mm) 패턴의 바이올린으로 원래의 스크롤은 없다. 매우 닳아있고 크랙이 많으나 사운드홀의 절개, 아칭 그리고 재료의 선택에서 안드레아 아마티 악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철자법에서 설명하기는 어려운 실수가 있지만 아마도 진짜일 듯한 인쇄된 라벨을 가지고 있다 - 'Andreae Amati in/Cremonae MDLXXII'. 라벨은 위의 I-1에서 본 아쉬몰리언의 작은 바이올린에서의 손상된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Connecticut, Witten family collection, formerly Finland, collection of Wahl. 

III 비올라들[각주:1] (Violas) 


1 장식된 비올라, 470mm, 샤를 9세 세트에 속함. 이 세트의 어느 다른 악기들 보다 더 장식의 패턴이 많이 있는, 이 잘 보존된 비올라는, 비록 현대의 올드 스타일의 피팅을 가지고 있지만, 원래의 테너 사이즈 비올라들 중에서 최초의 크기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보이든은 1574년으로 된 라벨이 인쇄된 것인지 손으로 쓴 것인지, 그가 이것을 진짜로 판단하는지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 Oxford, Ashmolean Museum, bequest of Arthur F. Hill, 1939; Boyden, Catalogue of the Hill Collection, no. 11. 

2 장식된 비올라, 409mm로 크기가 줄여졌으며,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후작을 위한 세트에 속함 (위의 2 대의 큰 바이올린들 II-2와 3을 참조). 이것은, 바디길이와 넓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안드레아 아마티 공방에서 생산된 장식악기의 2번째 세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악기이다. 스크롤의 소용돌이는 원래의 것이지만 펙박스는 교체된 것이고, 앞판의 바니쉬는 복원되어졌다. 라벨은 없다. 이 비올라는 스트라드지에서 소개되었고 (The Strad (35 (1925), pp.705-6 과 70 (1959)), 1981년 11월 5일의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서 판매되었다. Connecticut, Witten family collection, formerly in the collections of C. B. Lutyens and Mrs Hope Hambourg. 

3 장식없는 비올라, 419mm로 크기가 줄여졌고, 진짜는 아닐 것으로 보이는 손으로 쓴 라벨을 달고 있는데, 이 라벨은 아쉬몰리언 비올라 (위의 III-1)에서의 글귀를 반복하고 있다. 크기가 줄어든 점을 제외하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스크롤의 뒷족에 왕관 모양의 구형으로 브랜딩 되어 있는데 아마도 피렌체의 메디치의 대공작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1595년의 아마티 비올라에는 메디치가 문장이 그려져 있는데 같은 브랜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비올라는 19세기에 윌튼경의 소유였다. 1904년에 런던의 피쉬몽거즈홀 (Fishmongers' Hall) 의 음악 초대전 (Music Loan Exhibition) 에 전시되어 있었고 (catalogue (London, 1909), p.158), 1922년 보스톤의 진여사 (Mrs Ginn)에게 판매되었다. 1940년대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비올라 수석인 윌리엄 린써 (William Lincer)의 소유여서 연주회와 음반에서 자주 들어 볼 수 있었다. New York, 킴 카쉬카쉬안의 소유, formerly Connecticut, Witten family collection; illustrations in S. F. Sacconi, I segreti di Stradivari (Cremona, 1972; Eng. trans., 1979), figs.10-12. 

IV 첼로들 (Violoncellos) 


1 장식된 첼로 ‘King’, 프랑스 샤를 9세 세트에 속함. 다른 모든 현존하는 안드레아 아마티의 첼로와 거의 모든 초기의 일반적인 크레모나 첼로들과 같이 이 악기도 원래는 매우 큰 크기였고 바디길이는 약 795mm였다. 지금은 757mm정도인데, 중심선과 앞판의 위 아래, 그리고 뒷판을 잘라내어 길이가 줄어든 것이다. 장식의 대부분은 보존되어 있으며 스크롤은 원래의 것이다. 1872년 런던 사우스 켄싱턴 박물관 (South Kensington Museum) 의 고악기 특별전 (Special Exhibition of Ancient Musical Instruments)에서 (catalogue by Carl Engel (London, 1872), no.183), 그리고 1904년 런던의 음악 초대전에서 (catalogue (London, 1909), p. 159, 여기서 교황 피우스 5세 (Pius V)가 샤를 9세에게 헌정한 악기라고 언급됨) 전시되었다. Connecticut, Witten family collection; W. Sandys and S. A. Forster, The History of the Violin (London, 1864), p.203; illustrations of the scroll and pegbox in Sacconi, op cit, pp.16-17. 

2 장식된 첼로, 약 750-60mm, 샤를 9세 세트에 속함. 나는 이 악기를 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판단하면, 원래의 장식 대부분이 남아 있어 매우 잘 보존된 악기이다. 크기는 줄여졌고 스크롤은 원래의 것은 아니다. Europe, private collection. 

3 장식된 첼로, 샤를 9세 세트에 속함. 이 악기는 사진만 보았는데 심각하게 잘려져서 원래의 스크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장식은 상당부분 남아 있다. Western USA, private collection. 

4 장식된 첼로, 샤를 9세 세트에 속함, 740mm. 이 악기도 심각하게 잘리워 졌는데, 바이올린 제작자이고 전문가인 조셉 샤르동이 1,220 프랑으로 구입하였고 (Paris, Hotel Drouot, 22 December 1908, lot 1), 최근까지 그의 후손들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이 악기는 1982년 6월7일에 다시 판매되었고 (at the Hotel Drouot on 7 June 1982 as lot 40), 경매 카탈로그에는 이 악기의 컬러 사진이 실려 있다. 

5 장식없는 첼로, 약 755mm로 크기가 변형됨. 원래의 스크롤은 아니며 리바니쉬됨. 이 악기는 1569년으로 되어 있는 인쇄된 라벨을 달고 있으나,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진과 설명은 The Strad, 70 (1959), p.836. USA, private collection, formerly Connecticut, Witten family collection.

  1. 나는 몇 가지 추가적인 악기들 (모두 비올라)을 목록에서 제외하였는데, 그것들은 종종 안드레아 아마티의 악기라고 추정되어지는 것들이다. 그 중 두 가지 악기는 S. F. Sacconi, Isegreti di Stradivari (Cremona, 1972), p. 16, left의 장식된 비올라들과 같은 아마티 공방의 훗날의 작품들 (1585-95) 이라고 믿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아마티의 초기 모방작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며 아마도 이탈리아산은 아닌 듯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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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982, Early Music Vol. 10, No. 4, pp 487-494

1525년에서 1575년까지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중세 후기의 현악기 – 특히 비올라 다 브라치오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는 변형의 과정을 거쳤고 이 시기가 다 가기 전에 바이올린족 악기로의 완전한 발전이 이루어 졌다. 19세기 후반에 볼로냐의 바이올린 역사 전문가인 지오반니 리비 (Giovanni Livi)[각주:1]는 초기 제작자들에 관한 연구들에서 의존했었던 많은 기록에 대한 조사를 수행했다. 1930년대에는 누가 바이올린족의 “창조자”인지 관한 논쟁의 시기가 이어졌었다[각주:2]. 늘날, 우리는 이 중요한 악기족의 모든 특징을 다 발명해낸 것은 한 사람이 아니며 많은 장인들이 그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베네치아의 화집[각주:3]은 북동부 이탈리아의 위대한 상업 및 군사자본에서 그러한 발전의 명확한 패턴을 보여 주지만, 크레모나, 브레시아와 볼로냐 같은 바이올린 제작의 중심지, 또는 밀라노와 같은 아마도 바이올린제작이 활발했을 듯한 곳에 관한 비슷한 문서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출판물, 복사물, 전시회들의 덕분으로 또 직접 방문을 함으로서 초기 찰현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현존하는 악기들과 문서들에 대하여 이전에 가능했었던 것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증가된 지식의 결과로서, 안드레아 아마티가 현대 바이올린족의 크기를 표준화하고 구조적인 특징을 명확하게 했던 최초의 마스터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른 초기 북부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들과 관련하여 안드레아 아마티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도상학적인 증거들과, 현재까지 남아 있는 악기들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함께, 언급된 출판물들[각주:4]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것들을 조사하는 것이 유용하다. 초기 바이올린 제작자들과 그들의 악기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브레시아 (Brescia) 


페레그리노 또는 펠레그리노 드 미켈리 (Peregrino or Pellegrino de' Micheli)는 1520-22년 경에 브레시아 근방의 몬티치아리 (Montichiari)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네토 (Zanetto, c1489-1564)였는데, 지오반니 마리아 란프란코(Giovanni Maria Lanfranco)가 1533년에 브레시아에서 출판한 Scintille di musica의 마지막 판권 페이지에서 칭송하던 제작자였다. 자네토의 서명이 있는 두 대의 비올이 알려져 있으나 그 악기들이 사실은 그의 아들의 손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한데, 제작솜씨, f홀들, 스크롤이 의심할 바 없이 아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악기들은 자네토의 말년에 제작되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아마도 1564년[각주:5]에서 오래 전은 아닐 것이다. 페레그리노는 뛰어난 비올라들을 꽤 많이 제작했는데 그 중에서 내가 본 것은 3대[각주:6]이다. 페레그리노가 바이올린도 만들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몇 개의 출판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 악기들을 본 적이 없으며 그들의 진위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첼로가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적은 없다. 페레그리노의 라벨은 종종 고딕체로 인쇄되었거나 손으로 씌여졌고 날짜가 기록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가 1564년에 사망한 이후에야 악기들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스파로 베르톨로티 (Gasparo Bertolotti)는 1540년에 살로(Salo)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가스파로 다 살로라는 이름으로 매우 유명하게 된 것이다). 그는 1565년에 브레시아에서 자신의 공방을 열었고 그 곳에서 1609년 사망할 때까지 일했다. 현존하는 그의 악기를 조사한 적은 없지만, 상당 수의 여러가지 크기와 종류의 비올들이 알려져 있고, 적어도 10 또는 15대의 비올라 (역시 여러가지 크기의)와 훨씬 적은 수의 바이올린들도 알려져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남아있는 첼로는 없다. 가스파로의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매우 많은 악기들은 대부분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것들은 도매상들이 가스파로의 이름으로 초기 브레시아 악기들에 다시 붙인 라벨들 때문에 우리가 오늘 날에는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다른 브레시아 제작자들의 작품인 경우가 보통이다. 이렇게 라벨을 다시 붙이는 관습은 가스파로의 시대 또는 그의 사망 직후에 시작되었던 것일 것이다. 가스파로의 진품 라벨 중 어느 것도 날짜가 적혀있지 않으며, 이는 다른 모든 초기 브레시아 라벨들도 마찬가지이다.

베니스 (Venice) 


비록 위대한 베니스 제작자인 벤투라 디 프란체스코 드 마케티 리나롤(Ventura di Francesco de' Macchetti Linarol)을 찬양하는 전기적 연구서는 없으나 그는 1581년[각주:7] 뛰어난 바이올린을 만들었고 베니스와 파두아에서 1577년에서 1591년까지 많은 비올과 리르 다 브라치오를 제작하였다. 지금까지 출판된 자료를 가지고 있는 악기들은 주로 비엔나와 라이프찌히의 콜렉션들이다[각주:8]. 위튼 콜렉션(Witten family collection)에 있는 작은 베이스 감바는 1582년 베니스라고 서명되어 있으며 절묘한 솜씨로 제작되어져 있는데 1585년 파두아에서 만들어진 더블 베이스와는 작은 사이즈로 된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9]. 찰스 비어(Charles Beare)는 최근에 전형적이고 아름다운 작은 베이스 비올을 취득하였다. 그것은 코너가 없는 디자인이며 뒷판의 메인 바를 없애 남아있는 서명을 볼 수 있는데, 'Ventura de francesco Linarol in Venetia i59i'라고 되어 있다. 벤투라의 아버지인 프란체스코도 역시 잘 알려진 제작자였다. 1563년[각주:10]에 그가 만든 리라 다 브라치오가 남아있으며 베니스와 브뤼셀 콜렉션에 몇 개의 비올이 있다. 1535년 경부터의 베니스의 그림에서는 꽤 자주 큰 비올라들이 나타나지만, 초기의 발전기에 만들어진 베니스산 비올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팔라조 카타조[각주:11]의 비올라 다 브라치오이다. 나는 이 악기가 대략 1540년에서 50년 정도 (슐로써 (Schlosser)의 주장처럼 1500년까지는 아닐 것이다)의 악기라고 생각하며 프란체스코 리나롤이 서명한 악기들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도상학적인 자료들은 그렇게 큰 비올라가 베니스에서 사용되어졌음을 보여주지만, 내가 아는 한 그것들은 결코 첼로를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첼로로 현존하는 것은 도리고 스필만(Dorigo Spilman)의 것으로 현재는 베니스에 있다. 그는 또한 1591년 파두아에서 포쉐트 (pochette, 'TanzmeisterGeiglein')에 서명을 했었다. 그러나 이 악기는 남아있지 않다[각주:12]

볼로냐 (Bologna)


1628년[각주:13] 볼로냐에서 안토니오 브렌치(Antonio Brenzi)에 의하여 서명된, 좀 큰 크기의 훌륭한 비올라는 분명히 오늘날 알려진 볼로냐 최초의 바이올린족 악기이다. 그러나 이 제작자 (브렌티우스 (Brentius) 또는 브렌시우스 (Brensius)로 알려진)는 거의 4세기 전에 살았었음이 확실한데, 라이프찌히에 있는 'Antonius Brensius Bonon. 1592' 라고 서명된 잘 생긴 베이스 리라 다 감바가 이를 증명한다[각주:14]. 예전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에 관한 사전에서 안토니오 브렌스우스 또는 브렌치가 불가능할 만큼 이전 시기에 상당히 많은 악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안드레아 아마티 전생에 동안 또는 가스파로와 페레그리노의 초기 제작기에 바이올린족 악기들이 볼로냐에서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밀라노 (Milan) 


내가 아는 한, 1660년에서 75년 경 이전에 만들어진 밀라노산 바이올린족 악기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도시는 초기 시기에 바이올린 제작의 중심지로 간주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레모나 (Cremona) 


안드레아 아마티가 살던 곳과 출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보네티(Bonetti)는 그가 1505년 경에 살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으며 1580년에서 81년 경에는 45년 정도 현악기 제작 장인으로 크레모나에서 일했었다는 점을 확신을 가지고 보여주었다. 안드레아의 사망 이전에 크레모나에서 다른 제작자에 의하여 만들어진 어떤 종류의 악기도 알려져 있지 않다. 16세기 크레모나산 악기 중에서 안드레아와 그의 두 아들이 아닌 다른 제작자에 의한 악기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아마티가에서 제작된 상당 수의 현존하는 악기들 모두가 바이올린족의 악기들이다. 그리고, 주요 북부 이탈리아 중심지들에서 제작된 현명악기(chordophones)들은 종류와 수에서 많은 차이들을 가지고 있다. 비올라는 페레그리노와 가스파로의 브레시아 공방들의 제작품들에서 상당한, 그러나 지배적이라고 할 만큼은 아닌,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이올린을 덜 만들었고 아마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첼로는 거의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베니스에서는 비올과 리라를 주로 제작하였고 그 중에 오직 1대의 16세기 바이올린, 1대의 바올라 다 브라치오 – 이것은 완전히 발전한 모습의 바이올린족 악기는 아니지만 – 그리고 파두아 근방에서 아마두 1600년 이전에 제작되었을 1대의 첼로가 있을 뿐이다. 대조적으로, 크레모나에서는 16세기 제작품으로 알려진 모든 악기가 바이올린족의 악기에 속하며 모두 아마티가의 작품들이다. 만약 남아있는 악기들이 좋은 표본이라면, 이런 악기들의 생산은 매우 견고한 것이다. 

오늘날, 안드레아 아마티의 공방에서 생산된 4가지 크기의 악기들이 알려져 있다. 작은 크기의 바이올린들은 342mm정도의 바디길이를 가지고 있고, 좀 더 큰 크기의 바이올린들은 354mm정도이다. 매우 큰 비올라는 테너 사이즈인데 470mm정도이고, 첼로도 역시 매우 큰 사이즈이나 사이즈가 줄여지지 않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은 없다. 원래의 바디길이는 약 795mm정도로 추측된다[각주:15].

  1. 'Gasparo da Salo e l'invenzione del violino', Nuova antologia, 3rd ser., 16 (1891), pp.663-81; I liutai bresciani (Milan, 1896) [본문으로]
  2. See C. Bonetti, 'La genealogia degli Amati liutai e il primato della scuola liutistica cremonese', Biblioteca storica cremonese, 5 (1937), pp.3-63; A. M. Mucchi, Gasparo da Salo: la vita e l'opera (Milan, 1940); O. Foffa, Pellegrino da Montichiari inventore del violino (Brescia, 1937). [본문으로]
  3. Summarized in my article 'Apollo, Orpheus, and David: A Study of the Crucial Century in the Development of Bowed Strings in North Italy 1480-1580 as seen in Graphic Evidence and some Surviving Instruments', Journal of the American Musical Instrument Society, 1 (1975), pp.5-55 [본문으로]
  4. 이들 연구들은 주로 문헌적인 자료들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들은 종종 악기의 사진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현재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속성들을 다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본문으로]
  5. A cornerless tenor viol in the Brussels Conservatoire is no. 1410 in V.-C. Mahillon, Catalogue descriptif et analytique du Musee instrumental du Conservatoire royal de musique de Bruxelles, 3 (Brussels, 1912), where its original label, reading 'Zanetto in Bressa' in chancery script, is not noted; most unfortunately the label is now apparently lost, though I saw it in situ and a photograph of it in the viol is preserved. A small bass viol of identical workmanship with a similar manuscript label, is in the Witten family collection, Connecticut. [본문으로]
  6. 그 중의 하나는 the Witten family collection에 속해 있다. [본문으로]
  7. 이 악기는 전에 파두아 근방의 Palazzo Catajo 의 Obizzi 가의 수집품에 속해 있었고 현재는 비엔나의 Kunsthistorisches Museum에 있다; see J. von Schlosser, Die Sammlung alter Musik- instrumente. beschreibendes Verzeichnis (Vienna, 1920), no.C.96. [본문으로]
  8.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Leipzig, Musikinstrumenten- Museum der Karl-Marx-Universitat, including the Heyer Collection [본문으로]
  9.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Schlosser, op cit, no.C.78 [본문으로]
  10. Great Missenden, Bucks., collection of William E. Hill & Sons [본문으로]
  11. Vienna, Kunsthistorisches Museum; Schlosser, op cit, no.C.70 [본문으로]
  12. See Schlosser, op cit, no.C.lll and C.114. [본문으로]
  13. United Kingdom, private collection [본문으로]
  14. Leipzig, Musikinstrumenten-Museum der Karl-Marx- Universitat, formerly Cologne, private collection of Wilhelm Heyer; G. Kinsky, Musikhistorisches Museum von Wilhelm Heyer in Koln (Cologne, 1910- 12), no.782. See also E. Winternitz, Musical Instruments of the Western World (London, 1967), no.l1. [본문으로]
  15. W. Henry, F. Arthur and Alfred E. Hill, Antonio Stradivari, his Life and Work (London, 1902), appendix IV, state: 'We are only able to give the approximate dimensions of the Violoncello as made by the successive generations of the Amatis, as no example is known to us, the proportions of which have not been diminished.' They believed a body length of 31 inches, about 790mm, 'to be fairly accurate' and gave the length of the 'Aylesford' Stradivari cello of 1696, an instrument of the standard large Cremonese size, as 31 1/4 inches. Although uncut then and later while owned by Gregor Piatigorsky, this cello was reduced in size in the 1960s by a dealer to facilitate its sale. [본문으로]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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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 plastic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제품을 생산하는 대만의 기업, Chi Mei Corporation (奇美實業廠). 큰 기업이기는 하지만, 산업재를 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인지 회사 자체가 대만인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지는 않다. 그러나 올드 현악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Chi Mei"는 상당히 귀에 익은 이름일 것이다.


이 회사는 1960년에 설립되었는데, 창업자인 Wen-Long Shi (許文龍)는 본인 스스로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하고, 음악과 예술에 상당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본인이 스스로 연주도 여러 번 하는 모양인데, 요요마와 듀엣을 하는 사진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현재는 회장직에서 물러나있지만 여전히 주요한 주주라고 한다. 그나저나 위키피디아와 관련된 자료에서 본 그의 정치 또는 역사관은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ㅡㅡ;;)

그는 1977년에 치메이 문화재단을 만들었고, 그 후에 병원사업에도 참여하고, 치메이 Art Resource Center, 치메이 박물관을 설립하는 등 문화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92년에 설립한 치메이 박물관 (위 사진)은 입장료도 무료라고... (하지만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 곳에는 악기 이외에도 조각과 회화작품을 포함하여 많은 예술품과 그 밖의 다른 소장품들 (옛 무기류, 자연사류)도 전시 중이라고 한다. 이 박물관은 대만 남부의 Tainan County에 있는 치메이 본사 건물 5층에서 8층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악기들은 6층에 있는 듯Tainan Science Park에도 지점이 있는데, 악기별로 뭐가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치 않다.

원래 치메이 박물관의 악기 수집품의 대다수는 (당연하겠지만)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유명 현악기들이었으나, 점차로 다른 종류의 악기들도 많이 소장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1920년경의 미국산 자동피아노가 상당히 인기가 있다고도 한다.


그건 그렇고, 치메이가 소장하고 있는 악기들을 좀 더 살펴보자. 치메이측의 설명에 따르면, 5대의 스트라디바리, "Ole Bull"을 비롯한 2대의 과르네리 델 제수, 니콜로 아마티, 슈타이너, 아마티, 로제리, 조셉 과르네리, 세라핀, 갈리아노, 과다니니 등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화려한 현악기 콜렉션이라고 할 만하다. 1996년에 포브스지는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예술 수집품"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코지오에서 치메이의 콜렉션을 검색하면 모두 161대의 악기가 나온다. 스트라드만 첼로 2대 바이올린 4대로 모두 6대. 1730년 스트라디바리 첼로인 "Pawle"도 소장하고 있다.

이 악기들은 음악가들에게가 무료로 대여된다. 명기를 훌륭한 연주자들에게 사용하게 하여 좋은 음악을 하도록 하는 취지는 매우 당연하고도 옳은 일... 치메이 박물관에는 치메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고 하는 오케스트라도 있고 학생들을 위한 만돌린 오케스트라도 있다. 또 예술상을 만들어서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15대의 소장 명기에 대해 서술된 "Chi-Mei Collection of Fine Violins"이라는 책을 4000부 한정 발간한 적도 있다. 아마존에서 150불에 팔리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330불에도 팔리고...;; 풀사이즈의 악기 사진들과 자세한 부분 사진들이 실려 있는 모양이다. Shining Collection에 연락하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하는데, 아마존보다 싸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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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 날림으로 쭉 써봤다... 이 해설 말고도 제작자 계보도도 한 페이지 들어 있고, 바이올리니스트, 피아니스트, 풀턴에 대한 설명도 한 페이지씩 들어 있으나... 일단 손가락 아파서 생략... 번역이 이상한 점이 있으시면....  번역자에게 연락하시지 마시고... 그냥 알아서 생각들 해주셈...)

불펌은 절대 금지....



음악은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고 악기도 그러하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의 분류는 변함이 없지만, 악기들 그 자체는 계속적으로진화해왔다. 오늘날의 플룻은 고대 그리스에서 연주되던 플룻과는 거의 관련이 없고, 오늘날의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를 만약 바흐가보게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현악기들은 예외이다. 가장 탐나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들은 수백년전에 북부 이태리의작은 지역에서 몇 명의 전설적인 제작자들이 만든 것들이다.

가장 좋은 현악기들은 음의 아름다움, 폭넓은 다양한 음색, 선명한 음과 뻗어나가는 힘의 완벽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 많은 악기들중에서 이런 특징들 중 하나 혹은 심지어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악기를 찾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한악기가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를 찾는 것은 정말로 드믄 일이다. 이 음반에서 연주되는 악기들의 제작자들은 누구도 뛰어 넘지 못한바이올린과 비올라들을 제작했다. 왜 현악기 제작이 역사 속에서 이 특별한 시기에 정점을 이루었었는지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다.아마도 단 하나의 합리적인 설명은 현악기의 제작이 단순한 공작이 아니라 예술의 형태를 라는 것일 것이다. 많은 예술들과마찬가지로 바이올린의 제작도 훌륭한 예술가들이 악기에 대한 수요가 높았던 때에 가까운 거리에 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작품들을 창조하게 되는 "황금기"를 가졌던 것이다.

수 세기동안, 이 지역의 악기들은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이 훌륭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들로 중요한콜렉션을 만들었던 개인들이 있었고, 그런 콜렉션들을 통하여 악기들을 이야기 맥락에 맞게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가질 수있었고, 연주자들이 단지 개인적으로 악기들을 감상할 뿐만 아니라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비드 풀턴박사는 역사상 가장 멋진 개인 콜렉션을 모아왔는데, 세계에서 가장 알려진 현악기들이 그 콜렉션이 포함되어 있다. 이 음반은 지금시점에서 이 악기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는 그의 비전의 결과물이다.

바이올린은 1500년대에 지금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안드레아 아마티(대략1505년 - 1578년)는 "근대" 바이올린의아버지로 여겨진다. 아마티는 현재의 북부 이탈리아의 포 계곡에 있는 도시인 크레모나에서 작업했다. 비록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그의 악기는 얼마되지 않지만, 크레모나가 이탈리아에서 현악기 제작의 중심지가 되고, 과르네리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카를로베르곤지와 아마티 자신의 후손들 - 히에로니무스, 니콜로와 히에로니무스 2세 - 을 포함한 많은 다른 훌륭한 제작자들의 그 곳에살게된 것은 그의 성공 때문이다.

1700년대 초반까지 바이올린 제작은 정점을 이루었다. 그 시절의 논란의 여지 없이 가장 위대한 제작자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1644-1737)이다. 스트라디바리의 초기 라벨은 그가 니콜로 아마티의 제작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나, 오늘날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은 단순히젊은 스트라디바리가 그가 만든 악기들의 신뢰도를 높여 보이고자 대담하게 꾸며낸 라벨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의동시대인들처럼 아마티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0대와 40대에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하고 부유한가문들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는데, 스페인 왕족과 플로렌스의 메디치가들도 포함된다. 1700년대 초에 (대략 1709년 -20년. 몇몇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1703년부터 또는 심지어 1700년부터 시작한다고 확장하기도 한다), ) 그는 소위"황금기"라고 불리우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표준적인 바이올린으로 정의되는 악기들이 바로 이 시기에 제작된 악기들이다. 이 기간의 그의 바이올린들은 완벽한 음질과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결합되어졌으며 연주자들과 수집가들이 모두 열망하는 악기가 되었다.

쥬제페 과르네리 "델 제수" (1698-1745)는 역사상 위대한 바이올린 제작자 가문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제작자이다. 그의 할아버지인 안드레아 과르네리 (1626-1698)는 니콜로 아마티의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했었으며 이 녹음에 사용된 비올라를 비롯한 많은 뛰어난 악기들을 생산했다. 안드레아의 두 아들, 쥬제페 ("필리우스 안드레아"또는 안드레아의 아들)와 피에트로 ("만투아의 피터")도 또한 뛰어난 제작자들이었다. 그들의 바이올린은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바이올린들보다 더 나은 수준의 악기들로 여겨진다. 쥬제페 필리우스 안드레아도 역시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피에트로 ("베니스의 피터")와 IHS (예수의 그리스식 약어) 라는 문자와 라벨의 십자가 오늘날 우리가 "델 제수"로 부르고 있는 쥬제페이다. "델 제수"는 생전에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명성과 부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현재는 스트라디바리와 동급으로 생각되어 진다. 스트라디바리가 유럽의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시민들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던 반면, "델 제수"는 지역의 음악가들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현존하는 델 제수의 악기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설명해 줄 것인데, 약 140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첼로 (그의 아버지의 라벨을 달고 있지만 확실히 젊은 "델 제수"의 작품이다)만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조적으로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는 600대가 넘는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델 제수의 바이올린에 대한 비교는 꽤 많다. 많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두 제작자의 바이올린들을 시연하는 것을 즐겼었다 (헨리 비에니압스키, 프리츠 크라이슬러, 야샤 하이페츠, 예후디 메뉴인, 아르투르 그뤼미오, 이작 펄만) 그러나 다른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은 한 제작자의 악기만을 평생 연주했었다. 1742년 델 제수를 주로 사용하는 연주용 악기로 정하여 델 제수가 마땅히 받아야할 만한 인정을 받게 만들었던 것은 전설적인 니콜로 파가니니였다. 그러나 그는 스트라디바리도 또한 소유하였고 연주하였었다. 이 악기들과이 악기들이 연주회에서 사용될 만한 것인지에 대한 오해들이 많이 있다. 1700년대 초의 스트라디바리는 "연주용"으로는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 되었는데 이 믿음은 이 시기의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들 중 몇몇의 연주를 듣게 되면 확실히 틀렸다는 것이 나타난다. 스트라디바리의 "롱 패턴" 시기 (몇 가지 현저한 예외들을 제외하고는 대략 1692-99)의 바이올린들은 성공적이지 못한 실험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 바이올린 중의 몇 대는 훌륭한 연주용 악기들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리가 뻗어 나가고 크고 선명한 톤을 가지고 있다. 비슷하게, 1740년 이후의 "델 제수"의 작품들이 더 우수하다는 믿음도 존재한다. 그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악기들이 초기의 가장 우수한 바이올린들보다 정말로 더 높은 수준의 음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어느 한 제작자의 다른 제작자에 대한 "우위"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서로 다른 악기들은 각기 다른 연주자들에게 맞을 것이다. 각 제작자의 최고의 바이올린들은 악기가 연주되는 곳의 음향이나 선곡에 따라 다른 악기들보다 더 낫기도 할 것이고 또 연주자가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음악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궁극적으로, 이들 악기들은 표현의 수단이며 두 제작자의 위대한 악기들은 사실 끝없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악기로 하는 연주에서의 어떤 단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연주자의 잘못이지 제작자의 잘못은 아니다.

1698 Pietro Guarneri (Peter of Mantua) "Shapiro"
만투아의 피에트로 과르네리 (1655-1720)의 악기들은 매우 드물다. 그는 제작자인 동시에 음악가였고 이러한 두 가지 경력때문에 그가 악기를 많이 만들지 않았다을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알려진 바이올린은 42대, 1대의 테너 비올과 1대의 첼로가 있다) 연주에 쓰인 이 바이올린은 앞판과 뒷판의 각 코너에 모두 아름답게 새겨진 fleur-de-lys 덕분에 특별한 관심을 불러 모은다.

1709 Antonio Stradivari "La Pucelle"
이 유명한 바이올린은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스트라디바리 중의 하나이다. 이 별명은, 위대한 바이올린 제작자이며, 딜러, 수리복원가였던 J.B.뷔욤이 1850년 경에 처음 이 바이올린을 보고 이것은 "comme une pucelle!" ('처녀 같다!')라고 경탄한 데에서 왔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만, 이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의 손에서 떠난 이후로 한번도 열려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뷔욤은 이 악기를 모던 악기로 만들었는데, 넥, 베이스바와 피팅을 바꾸었다. 이 바이올린은 그 때 이후로 어떤 변경이나 수리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아직도 뷔욤의 펙과 테일피스를 달고 있으며 테일피스는 쟌 다르크 (프랑스에서 "오를레앙의 처녀"로 알려져 있는)의 이미지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이 바이올린은 이전에 녹음이 된 적이 전혀 없다.

1713 Antonio Stradivari "Baron d'Assignies"
이 바이올린은 밝고 강한 음색과 매우 잘 되어 있는 보존 상태가 뛰어난 점이다. 이 바이올린은 아주 많이 사용된 흔적이 보이지 않고 사실 1955년까지 전문가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데이비드 풀턴은 알려져 있던 이 바이올린의 소유자들 중 3번째이다. 구조에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면은 앞판의 두께인데, 2.9mm이고 다른 알려진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들 보다 1/4mm정도가 더 두꺼운 것이다.

1715 Antonio Stradivari "Marsik"
나는 1999년 9월부터 이 바이올린을 나의 연주용 바이올린으로 이용해왔는데 이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인 Martin-Pierre Marsik의 이름이 이 악기에 붙어있기는 하지만, 그는 이 악기를 1879년에 취득하여 1880년에 팔았기 때문에 단지 1년만 소유했었다. 악기의 소유자들은 1870년에서 20세기 초까지 알려져 있다. 그 후의 어느 시점에 바이올린은 소련으로 넘어갔고 영국의 딜러인 Peter Biddulph가 1990년에 되살 때까지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Marsik" 스트라드는 하나 더 있는데 1705년에 제작된 것으로 나중에 데이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악기가 되었었다. Marsik은 20세기로 바뀔 무렵에 1726년 스트라드도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도 존재한다.

1715 Antonio Stradivari "Baron Knoop"
스트라디바리의 가장 유명한 악기들 중 하나인 이 바이올린은 위대한 수집가였던 Johann Knoop 남작 (1846-1918)의 이름을 받았다. 그는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현악기 콜렉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유명한 영국의 딜러인 알프레드 힐에 따르면, 이 바이올린은 남작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였다. 이 악기는 힐의 스트라디바리에 관한 책에서 "Bevan" (훗날의 소유자)로 불리워졌었으며 "일급의" 악기로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 야샤 하이페츠는 이 악기를 1936년 12월에서 1938년 1월까지 사용했었다.

1719 Antonio Stradivari "Duke of Alba"
이 악기의 소유자들은 1788년까지 알려져 있는데, 그 때 Duke of Alba가 마드리드의 Vicenzo Ascensio에게 수리를 맡겼었다 (아직도 라벨에는 Ascensio의 글씨가 적혀있다). 많은 위대한 바이올린들처럼, 이 악기도 1850년 프랑스의 딜러인 뷔욤에게 가게 되었고 그 후 독일의 귀족인 Wilhelm von Booth의 가족에게 판매되었으며 1911년까지 그 가족이 악기를 소유했다. Otto Booth (Wilhelm의 아들)가 20세기초까지 소유하고 있었으나 바이올린은 남미에 있었고 아서 힐에 따르면, 그 시기 그 쪽에 있었던 유일한 스트라디바리였다.

1733 Antonio Stradivari "Sasson"
스트라디바리 말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 악기는 보존이 매우 잘되어 있고 그동안 대부분 아마추어 연주자들과 수집가들의 손에서 전해져 왔다. 이 바이올린은 1892년 Roussy가 (Nestle 우유의 창업자) 구입하였고 75년동안 그들의 소유였다. 이 시기의 대부분 이 바이올린 사실상 전혀 연주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1924년에서 1966년까지 악기는 런던의 창고에 있었다. 스트라디바리의 후기 악기들의 전형으로, 뒷판, 옆판과 스크롤의 메이플은 평범한 무늬이고 바니쉬는 "황금기"의 악기들보다는 더 갈색이다.

1737 Giuseppe Guarneri 'del Gesu' "King Joseph"
이 바이올린은 델 제수의 중후반기의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장인으로서의 솜씨가 보여주는 위대한 아름다움이 놀라운 음색과 결합되어 있다. 뒷판은 원피스 슬랩컷의 메이플인데 델 제수의 작품으로는 약간 특이한 모습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첫번째 델 제수 바이올린으로 알려져 있는데, 별명처럼 그의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종종 평가된다. 흥미롭게도, 이 바이올린은 이 전에 "킹" 조셉 과르네리로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킹 조셉" 과르네리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역시 "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1735년 델 제수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한 목적인 것 같다.

1742 Giuseppe Guarneri 'del Gesu'"Lord Wilton"
이 유명한 바이올린은 예후디 메뉴인의 마지막 연주악기였다. 그는 1940년대부터 이 악기를 연주해왔고 1978년에 구입했다. 악기의 상태는 완벽하고 수 세대동안 가장 음색이 뛰어난 델 제수로 인식되고 있다. 이 악기는 힐가문이 특히 좋아했던 악기였는데, 그들은 과르네리가문의 제작자들에 대한 1931년의 책에서 이 악기를 특별히 언급했었다.

ca. 1560 Gasparo Bertolotti (Gasparo da Salo)
안드레아 아마티가 크레모나에서 근대 바이올린을 발전시켰다면, 가스파로 다 살로 (1540-1609) - 가스파로 베르톨로티로 보통 알려져 있는 - 는 브레시아에서 울퉁불퉁하기는 하지만 음색은 뛰어난 악기들을 제작하고 있었다. 가스파로 다 살로가 만든 비올라들은 깊고 멋진 울림의 음색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큰 사이즈 때문에 비올리스트들이 긴 팔과 손가락이 없이는 연주하기가 힘들다. 슬프게도, 많은 그의 악기들은 작은 연주자들에 좀 더 "실용적"이 되도록 수년동안 크기가 줄여져 왔다 (이것은 스트라디바리의 초기 첼로의 운명과도 같은 것인데, 그 첼로들은 현재의 기준으로는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들어졌었다). 이 악기는 원래의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 비올라의 바디 길이는 결코 표준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악기의 바디길이인 17과 5/8인치는 일반적으로 '풀사이즈' 비올라라고 여겨지는 길이보다는 1인치 정도 더 긴 것이다.

1676 Andrea Guarneri "Count Vitale, ex Landau"
현존하는 가장 사랑받는 비올라로 이 제작자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5대의 비올라 중 하나이다. 200년동안 아마추어와 수집가들의 손에 있었으며 거의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악기는 유명한 제작자인 카를로 만테가자에 의하여 모던악기로 바뀌어지기는 했지만, 원래의 넥을 가지고 있는 크레모나 악기로서는 드믄 예이다. 이 악기의 기록은 코지오 디 살라부에 백작의 1816년 4월1일의 일기인데, 그때 밀라노의 비탈레 백작에게 소유권이 넘겨졌고 그의 이니셜 (S.V)는 뒷판의 버튼에 새겨졌다. 이어서 윌리엄 커티스 경 (1790년에서 1826년까지 런던시 의회의 멤버였으며 1795년에는 Lord Mayor)에게로 소유권이 넘겨졌고 조지 4세의 실내악 음악 공연에서 종종 사용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1793 Giuseppe Guadagnini "Rolla"
쥬제페 과다니니 (1753-1805)는 뛰어난 제작자인 J.B.과다니니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처럼, 그도 생전에 많은 도시들을 다니며 일했는데, 이 비올라는 파르마에서 제작되었다. 이 악기는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졌고 바디의 길이는 15와 5/8인치에 불과하다.

현악기에 맞는 활을 짝 맞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활이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에 만들어 내는 차이는 현저한 것이어서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활은 밝은 악기에 깊이를 더해줄 수도 있고 부드러운 악기에 밝은 톤을 더해줄 수도 있으며, 더 선명하고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위대한 바이올린에 위대한 활을 매치시키는 것만으로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결합은 악기의 음색을 억누르거나 바람직한 수준을 넘어서서 음색의 특정 측면만을 과장해 버릴 수도 있다.

이 녹음에 사용된 활은 두 명의 가장 걸출한 활 제작자인 프랑소와 자비에르 투르트 (1747-1835)와 도미니크 페카트 (1810-1874)에 의해 제작된 것들이다. 데이비드 풀턴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활 콜렉션도 아지고 있는데, 나는 서로 다른 활들을 서로 다른 악기에 비교해보면서 완벽한 매치를 찾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냈다. 9대의 바이올린들에서, 나는 4대의 서로 다른 활을 사용했다. 두 대의 델 제수 바이올린에는 투르트활, "Baron Knoop", "Pucelle" 그리고 "Duke of Alba" 스트라디바리에는 또 다른 투르트, 그리고 "Sassoon" 스트라디바리에는 또다른, 초기의 투르트를 썼고, "Marsik"과 "Baron d'Assignies"스트라디바리와 피에트로 과르네리에는 페캇을 사용했다. 나는 각각의 비올라에 모두 다른 활을 사용했는데, 과르네리와 가스파로 다 살로에는 투르트들을, 과다니니에는 페캇을 사용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선곡은 특별한 과제였다. 이 녹음이 음악적인 장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과 많은 악기들이 사용된다는 점에 관계없이 흥미있고 즐거운 프로그램이 되도록 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나는 또한 개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특별한 장점을 잘 보여주는 곡들을 고르고 싶었다. 데이비드 풀턴과의 우정 덕분에 나는 이 녹음을 하기 전 수 년동안 이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꽤 잘 알 수 있었다. 이 녹음의 모든 선곡은 특정한 악기를 염두에 두고 고른 것이며 문제의 악기의 음색을 잘 보여 줄 수 있게 하려는 생각에서 된 것이다.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의 일부와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이 기상곡의 일부는 내가 몇 년간 바이올린과 비올라들을 시연해보면서 연주했었던 곡들이다. 악기의 전 음역을 커버하면서 이 음악들은 특정한 악기의 음색의 가능성을 알아 볼 수 있는 빠른 길이 된다. 악기들 간의 서로다른 음색은 사실 매우 미묘하고 물론 연주자의 특질이 어느 바이올린이나 비올라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청중들은 이 엄청난 악기들 각각의 독특하고 개별적인 목소리를 들게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제임스 에네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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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yx에서 지른 씨디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배송비도 생각보다 저렴했는데 말이다...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을 수도 있긴 하지만 기다리지 못하고 지른 이 CD와 DVD는 매우 만족스럽다.

(사실 이 음반+DVD의 소개는 만술님의 블로그에서 보게 된 것이었는데, 보자마자 찾아 보고 별 다른 갈등이 없이 질러 버렸다. 그 후에 만술님이 풍월당에 입고된다는 답글을 주셨는데... 이미 해외에서 직접 질러 버린 후라서... 느릿한 아마존 등 해외 판매업체에게 많이 시달려 본 까닭에 괜히 해외에서 질렀다고 후회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정도만에 내 손에 들어 온 것이다. ^^)

CD에서는 9개의 바이올린으로 브루흐의 스카티시 환타지를 비교 연주한 트랙들이 꽤 흥미롭다. 1분정도 길이의 음악을 서로 다른 9개의 악기로 연주해서 각 악기의 느낌이 어떤지를 조금씩 맛볼 수 있다.

집에 와서 DVD를 보고 있는 중... 100분정도 되는 DVD에서 에네스는 직접 악기에 대한 감상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그 악기를 연주한다. 이 많은 훌륭한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는 에네스는 스스로도 매우 행운아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로 연주하는 영상은 악기도 연주자도 매우 자세히 잡고 있어서 보고 있는 시청자의 만족도를 최대화한다.

그가 어떻게 풀턴을 알게되었는지, 또 Marsik Strad를 빌려서 8년째 쓰고 있는 사연도 이야기하는데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매우 운이 좋다는 생각도 들고..

Shapiro에 대하여 설명할 때, 악기가 Marsik보다는 좀 작아서 연주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갑자기 그 악기가 마구 탐나기도...^^;; 내 기억에는 그 악기가 풀턴이 처음으로 수집한 그 악기인 듯... (아래 내가 바친기에 썼던 글을 보니 이 기억이 맞는 듯^^)  그런데 이 1698년 피에트로 과르네리는 음색이 매우 따뜻하고 풍부한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물론 모든 악기들이 정말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답고 멋진 소리로 연주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연주자도 훌륭하고...ㅠㅠ

그는 활도 멋진 것들을 쓰면서 연주를 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투르트와 페캇. 모두 풀턴의 콜렉션이고 여러 대의 활을 사용하였던 것 같다. 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과르네리는 투르트와 스트라드와 페캇과 잘 맞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악기마다 여러가지 활을 시험해보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아.. 투르트와 페캇이건, 과르네리와 스트라드건... 나는 그저 바라만 볼 뿐...ㅜㅜ;;

DVD에 Extra로 포함되어 있는 인터뷰들도 매우 흥미롭다. 에네스의 인터뷰들과 풀턴의 설명, 비교연주 등... 정말 돈 하나도 안아까운 CD와 DVD이다.

앨범 구입처는 http://www.onyxclassics.com/cddetail.php?CatalogueNumber=ONYX4038

Shapiro로 듣는 Wieniawski (arr. Fritz Kreisler)- Etude-Caprice Op. 18 No. 4 (유튜브에는 티저 동영상 이외에 이것도 벌써 올라와 있더라는..)

Homage의 티저 동영상



아래 글은 내가 재작년 초에 바친기에 올렸던 풀턴 콜렉션에 대한 정보...

아래에 있는 악기들 중 녹색으로 표시한 것들이 이번 앨범에 "출연"한 분들.... 그런데, 아래 리스트에 없는 악기들도 있다. 적어 보자면...

바이올린은 Antonio Stradivari, 1719 Duke of Alba 와 1733 Sasson도 연주되었고,  비올라는 아래의 과르네리 이외에 Gasparo Bertolotti (Gaspato da Salo) ca1560와 Giuseppe Guadagnini 1793 Rolla 도 연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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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웰백님이 올리신 Fulton씨(http://cafe.naver.com/violin79/17000). 그 분의 악기 목록을 Cozio.com에서 뽑아봤습니다. sheilascorner에 있는 악기들 보다 몇개 더 많더라구요^^ 첼로에 비올라... Fulton이라는 이름은 가끔 cozio에서 악기 검색하면 나와서 누군지 상당한 재력가로군.. 하고 생각했었었죠...  

 

http://www.cozio.com/Owner.aspx?id=152에 가셔서 ID를 클릭하시면 각각의 악기의 설명도 보실 수 있습니다^^


ID Maker  Type  Year  Name  Owned From  Owned In  Owned Till








2324 Guarneri, Pietro (of Mantua)  violin  1698 ex-Shapiro  1981 2002  
212 Stradivari, Antonio  violin  1709 La Pucelle; Virgin, Maiden     2002  
1291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3 Baron d'Assignies  1997     
254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4 Sinsheimer; General Kyd, Perlman  1994 2005  
667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5 Marsick     2002  
1471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5 Baron Knoop; ex-Bevan  1992     
411 Guarneri del Gesu`, Giuseppe  violin  1734 Haddock  1993 1998  
417 Guarneri del Gesu`, Giuseppe  violin  1735 d'Egville  1998     
213 Guarneri del Gesu`, Giuseppe  violin  1737 King Joseph     2002  
214 Guarneri del Gesu`, Giuseppe  violin  1737 Stern; ex-Panette, ex-Balatre, ex-Alard  1994    2005
3016 Bergonzi, Carlo  violin  1740c  ex-Kreisler     2004  
256 Guarneri del Gesu`, Giuseppe  violin  1742 Lord Wilton  1999     
447 Guarneri del Gesu`, Giuseppe  violin  1743 Carrodus     2003  








793 Guarneri, Andrea  viola  1676 Conte Vitale     2002  
278 Stradivari, Antonio  cello  1713 Bass of Spain; Adam  1999     
2864 Montagnana, Domenico  cello  1737 ex-George Gudgeon     2004  
1626 Guarneri, Pietro (of Venice)  cello  1739c  ex-Beatrice Harrison     2004  

요 아래 링크는 Fulton씨에 대한 약간의 백그라운드가 나와있는 셰일라스 코너 웹페이지입니다. 페이지 아래쪽에 풀턴씨에 대한 기사가 몇개 링크되어 있는데 재밌는 내용이 많습니다.... (단.. 영어라는것ㅡㅡ;;)..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떻게 악기병 환자 (악기 중독자...)가 되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떻게해서 처음에 집 값보다 더 비싼 Pietro Guarneri of Mantua를 사게되고.. 스트라드와 델제수들을 사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구요.. 그래도 이 아저씨가 악기 사들이던 때는 악기값이 그나마.. 지금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던 것 같더군요...

 

바이올린의 투자가치에 대한 이야기 끝에 풀턴은 악기를 모으는 것이 "투자"가 아니라 "순수한 소비"라고 하더군요.. 자신은 악기를 모으기만 할 뿐, 팔지 않기 때문에...ㅡㅡ;;

 

그는, 자신을 수백년을 살고 있는 이 악기들의 단지 본인의 인생만큼 (몇십년간)의 보관자일뿐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악기를 들고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을때, 비행기가 떨어져서 악기가 파괴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사고가 나면 본인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나 들더랍니다.. 진정한 악기애호가에요...^^

 

http://www.sheilascorner.com/collectordave.shtml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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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사고 도미넌트로 세팅을 한 후 꽤 시간이 흘렀다. 좀 더 부드러운 현으로 바꿔 볼까 하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고는 있었지만..... 아껴야 잘 산다... 라는 궁핍 경제학을 바탕으로 몇 달을 버텨 왔다. 더구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환율 때문에 현 값도 어마어마하게 비싸졌고...

사실 이 찌간느 현은 오래 전에 사놓은 것이다. 그저... 경기 침체 시에 생활 재고를 비축하자는 생각에...안 쓰고 고이고이 모셔놓았던 것이었는데, 엊그제의 합주 연습에서 내 바이올린의 챙챙대는 음색에 스스로 괴로와.... 어제 결국 현을 싸그리 갈아 버렸다.

하지만, 음량은 줄지 않은 듯 하고.. 다만, 쇳소리는 좀 덜나는 것 같다. sonority는 많이 좋아진 것 같고.... 현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좀 더 써봐야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재고도 떨어졌고.... 찌간느는 정말 오래 써야쥐...ㅠㅠ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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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신이 강림하사....;;; 오보에를 하나 구했다. 물론 저렴하게...그리고 중고... ; 아마 구할 수 있는 가장 싼 오보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긴 한데.... 멋진 프랑스 악기에 비하면 소리야 보잘 것 없을 테지만... 어떻게 부는지도 모르는 나로서는 별 상관은 없을 듯 하다. ㅡㅡ;;;

이로써... 우리집에는 야마하 클라리넷, 야마하 플룻, 그리고 야마하 오보에... 온통 야마하의 목관악기들이 가득차게 되어 버렸다.


도착한 케이스. 좀 낡았다.


케이스를 열면, 리드를 제외한 악기와 립스틱처럼 생긴 코르크 윤활제가 들어 있다.


리드는 예당 앞에 가서 직접 구입을 할까,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는데, 결국 해외에 주문을 했다. 그냥 대량생산품 중에 평판이 좋은 것들을 골라서 주문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쉽핑이 되지 않았다. 물어보니 back order여서 한 달은 걸려야 배송이 된다고....

성질 급한 나는, 당장에 주문을 취소하고 (환율이 너무 올라서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점심시간에 낙원상가에 가서 리드를 하나 구했다. 낙원상가에는 오래간만에 가봤는데... 회사에서 엄청 가깝다는 것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간만에 이런 저런 악기들을 구경하고....

리드는 리고티의 미디엄소프트. 사실 그다지 권장되는 브랜드는 아니었고... 가격도 살짝 비싼 듯 했지만 집에 도착해있는 오보에를 생각하고는 주저없이 구입했다.


집에 와서 리드를 적셔 불어 봤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소리가 났다. 악기에 리드를 연결해서 불었는데, 역시 우려했던 것보다는 소리내기가 어렵진 않았다. 며칠은 걸려야 소리가 나지 않을까 했는데...ㅎㅎ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음정이 조금씩 낮다. 리드를 끝까지 끼워 가능한 가장 높은 소리가 나도록 했는데도, 거의 반의 반음정 정도가 낮은 것.... 악기의 문제인지, 내가 잘 불 줄 몰라서 그런 건지,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ㅠㅠ

그리고 호흡은 확실히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리드가 상당히 강하게 불게 되어 있는 구조인 듯해서... 숨이 모자란다.

레슨을 받는 것은 역시 시간과 돈의 문제.... 아마도 레슨이 꼭 필요할 듯 한 악기인 듯은 하지만... 당분간은 혼자서 좀 가지고 놀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뭐... 음정문제는 좀 해결이 필요하겠지만..;;;;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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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룻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이 벌써 1-2년은 넘었는데, 아직은 호흡도 힘들 것 같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만 하기도 힘들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구입한 야마하 YFL-211. 야마하의 모델 중에서 제일 저렴한 플룻이다.



도착하자마자, 혼자 조립하고 혼자 책 보고 운지법을 익히더니 간단한 동요는 분다. 피페를 해봐서 좀 나은 것 같다. 아직 선생님을 구해서 정식으로 배우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혼자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테니까.... 선생님을 구해봐야 겠지... 시간과 비용이 문제..;;;;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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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케이스를 하나 마련하고 싶어서 가끔씩 어떤 케이스를 살까 궁리를 해보고는 했지만, 만만하지 않은 뽀대나는 케이스들의 가격에 번번히 "다음에..."하고 말았었다. 지난 주에는 급기야 무사피아 저가 모델을 하나 질러보자... 고 마음먹고는 모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헉.... 유로가 오른 탓인지 가격을 갑자기 70불-100불 정도 올려 놓은 것이 아닌가! 며칠 전에도 그대로 였는데....;;; 오른 가격에 질러 버리기엔 어쩐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무사피아를 포기하고... 여기 저기 둘러 보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도 나쁘지 않은... 그리고 남들이 "하드"라고 평을 써놓은 케이스를 발견했다. 영문자로 좀 정신없어 보이는 디자인과, 브라운 세무로 된 디자인의 두 가지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터라.... ;;; 브라운 색을 골라서 일단 주문을 넣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지 10분 정도 되었을 때, 판매자에게 연락이 왔다. 세무는 얼룩진 것 밖에 남은 것이 없다나... 흠.. 그럼 아예 없다고 명시를 했었어야지...;;; 속으로 투덜댔지만, 그냥 '귀찮아서' 영문자 디자인의 케이스를 보내라고 했다.

주말을 지나서, 어제 도착한 케이스는 대략 이런 모습. 일반 스티로폴 케이스 보다는 좀 무겁다. 재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적어 놓은 평을 보니 약 2.5kg정도 되는 모양이다. 악기도 넣고 책도 몇 권 넣어 보니 상당히 묵직하다. 영문자 디자인이 좀 튀긴 하지만 그럭저럭 깔끔해 보인다. (아래 사진에는 책을 너무 많이 넣어서 위가 좀 불룩하게 튀어나온 모양이 되었다.)


사진 뒷 편에 지저분한 CD장이 나와 버렸다...;;;




케이스 내부는 파란색이다. 좀 너무 파란색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 하다.


악기를 넣어 보았다.




습도계도 달려 있다. 습도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습도가 거실에 있는 디지탈 습도계의 습도와 비슷하게 나오는 걸로 보아... 제대로 작동중인 것 같다... 60%+ a ... ㅡㅡ;


이불을 반쯤 덮은 악기.


사진 찍고 있으니 달려와서 끼어들어 보는 라라.... ;


케이스의 수납함에는 어깨받침이 두 개, 송진 하나, 튜너도 하나, 약음기 등등이 들어간다. 삼각 케이스를 쓰다가 오랫만에 사각케이스를 써보니 공간이 상당히 넉넉하다.


배낭처럼 등에 맬 수도 있고 어깨에 맬 수도 있는데, 오늘 등에 매어 보니, 무게가 좀 나가는 관계로... 뒷 편의 천이 찢어질까봐 상당히 불안하다. 아무래도 어깨에 매는 쪽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가격에 비해서 상당히 그럴 듯 하다. 중국이 인건비가 싸긴 싼 모양이다.... 저 가격에 케이스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좀 더 써봐야 알겠지만, 만 하루 좀 넘게 사용해 본 바로는 가격대비 효용이 꽤 좋다.

(다만, 오늘 바이올린을 차에 넣고 출근했다가, 모 관공서 옆 건물의 지상 주차장에 본의 아니게 2시간 여를 세워 놓았더니.... 바이올린이 더위를 먹어 버렸다...ㅠㅠ 악기가 좀 정신차리게 에어콘도 틀어 주었는데... 상태가 좀 좋아졌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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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1년이 훨씬 넘게 쓰고 있었던 7/8에 별로 불만이 없어 한동안 악기 지름신을 멀리 할 수 있었는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ㅡㅡ;;) 지난 번 활에 이어 사버린 악기. 사실 유명 제작가의 7/8악기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 한 번 써보고 싶기도 했다.  가끔 작은 사이즈 악기 중에도 멋진 악기가 보이기는 했지만 항상 그림의 떡이었다. 어쨌건 내 손에 들어온 악기.

전 주인들이 험하게 다뤘는지, 악기에, 특히 앞판에 여기저기 상처가 많다. 아무래도 작은 악기들은 어린 주인들을 만나기 쉽고... 그런 주인들은 조심성이 덜하기 마련인 듯....



f홀. 베이스쪽 f홀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트레블쪽은 좀 더 상태가 좋지 못하다.


플래쉬 터뜨리지 않고 찍은 앞판.


그리고 뒷판.


스크롤. 플래쉬 때문에 너무 밝게 나왔당....;;


악기는 화사하고 큰 소리가 난다. 그 전의 악기가 매우 부드러운 음색이어서 더욱 비교가 된다. 이 악기로 약 30분 연습을 하니 식구들이 모두 괴로워하며 한 두 마디씩 불평을 하기 시작하더라...;; 결국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돼지코 약음기를 끼고 연습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 추측컨데 장착된 도미넌트 e현이 청중들의 괴로움을 더하고 있는 듯하지만... 아까워서 당분간은 그냥 쓸 생각이다. ㅎㅎ

아직 밖에서 소리를 들어보지 못해서, 이 소리가 잘 뻗는 큰 소리인지 아닌지는 확인을 못해봤다. 어쩌면, 콜린 메진의 악기가 (좀 거칠지만) 강한 음색을 가졌다는 소문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거친 음색은 지난 세월동안 부드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도 가지며...)

"Luthier a Paris Rue du Faub Poissonniere No 29 1906"
"Exposition Universe Paris 1900 Grand Prix"
 두 가지 라벨이 붙어 있고 콜린 메진의 서명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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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별볼일 없는 실력이라 활은 써봐도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동안 내가 써본 활은 연습용을 벗어나질 못했었다. 그동안 쓰고 있던 활들을 나열해 보자면...

연습용 번들활
추첨에서 당첨되어 받은... 몇 만원 정도 할 것으로 보이는 활,
미국 출장길에 호기심으로 사 본 100불정도 하는 카본 활,
출처 불명의 좀 무거운 실버마운트 각 활,
에떼르노의 반수제 활 (이것도 약간 무거움)

위의 활들 중 카본활과 에떼르노 활을 주로 써왔는데, 가벼운 활이 좋을 때는 카본활을, 그게 지겨워지면 반수제활을 썼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나름 쓸만해 보이는 활을 질러 버렸다. 연습도 안되고 소리도 잘 안나면... 역시 지름신으로 기분전환을 해야 하는 법....ㅡㅡ;; 가볍고, 모양도 나름 이쁜 활인데, 흠이라면.... 너무 비싸게 산 것이랄까...ㅡㅜ (사진은 흰 티셔츠를 마루에 깔고 똑딱이 디카로 찍은 것...;;;)












활을 사고 나서 제작자와 연락을 취하여 받은 써티. 어제 도착했다. 요즘 정신이 없어서... 집에 도착한 이 우편물을 보고는 이게 뭔가 했었다가... 활 그림을 보고서야 써티가 왔다는 걸 깨달았다. (사진의 이름과 주소를 가린 구름과 하트가 정말 안 어울리넹....;)






요하네스 핑켈은 스위스의 활 제작자. 4대째 활제작을 하고 있는 집안이다. 증조할아버지인 에발트 바이드하스가 페티크의 공방에서 일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잘 알려진 제작자들. 독일
Markneukirchen에서 일하다가 스위스로 이주했다. 요하네스 핑켈은 아버지에게서 배우고, 런던, 로스엔젤레스,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일하다가 아버지의 은퇴 후 공방을 이어받기 위하여 스위스로 돌아왔다고 한다. 활에는 J.S. Finkel이라는 스탬프가 찍혀 있다. 스위스에 있는 그의 워크샵의 인터넷 사이트는
http://www.finkel-bows.ch/
.

이 활은 발란스도 꽤 괜찮은데, 그동안 주로 무겁고 단단한 활들을 써와서 그런지 보잉을 하면 뜬 소리가 난다. 활털을 갈아주고... 검지에 좀 더 중심을 실어서 보잉을 하면 좀 나은 듯...

바이올린 연습하다가 활로 악보도 넘기고, 애들도 혼내고 (ㅡㅡ;;) 했는데, 이 활로 무의식 중에 그러다가 허걱하곤 한다. 활 도착한 직후에 남편(아니... 오빠던가...;;;)이 활 구경하다가 이 활로 등을 긁으려고 하길래...;;;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음... 역시 다용도(!)로 막 쓰기엔 100불짜리 카본활이 최고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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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사고 싶었던 우쿨렐레를 한 대 구입했다.

어제 배달 온 악기를 보고 우리 남편왈...
"이젠 정말 별걸 다 사는구나"
"....."

원래는 크기가 작은 소프라노를 사고 싶었는데, 픽업이 달려 있다는 말에 그냥 테너 우쿨렐레를 사고 말았다. 코드 잡는 것은 악기가 작고 현도 4현이라 별로 어렵지는 않다. 기타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연주가 가능할 정도. 남편은 내가 기껏 조율해 놓고 코드표 보면서 버벅거리자 바로 뺏어서 대충 연주를 하더라는...;;

지금은 옆에서 우리 딸도 C, F 코드 정도만 들어가는 동요를 반주를 넣어 보고 있다. 손이 작은 아이들도 쉽게 반주가 되는 좋은 악기이다. ^^

피아노 위에서 라라가 새로온 우케를 바라보고 있다. 알러지때문에 며칠 전에 털을 깎았더니 가분수 냥이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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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도 작고, 팔도 짧고, 손가락도 짧아서, 4/4 악기를 쓰면서도 늘 불만이 가득했었다. 악기만 조금 더 작으면 정말 연주가 너무나 잘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나 할까. 그날 그날 연습이 안되면, 악기가 너무 커서 그렇다는 둥, 바디가 36센티나 되는 거대 악기라는 둥.. 온갖 핑계를 악기의 크기에 갖다 붙이곤 했다.

레슨 선생님도 손이 작다는 둥, 악기가 크다는 둥의 말을 가끔씩 하셨는데, 그게 학생의 실력을 탓해서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 보다는 나아서 그러시는 것이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7/8을 가져보고자 하는 내 열망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 되었었다.

4/4인 빅토르 오디놋을 처분하고... 잠시 3/4을 사용해봤었는데, 3/4은 정말 연주가 편하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작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3/4는 아닌 것 같고, 4/4 중에서도 넥이 얇게 빠져 있거나, 길이가 좀 짧은 악기를 구하거나, 정말 7/8을 구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이 악기를 발견했다.

모양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고, 판매자가 올려 놓은 사운드 샘플도 그럭저럭 맘에 들었다. 가장 맘에 든 것은 가격...ㅡㅡ;; 한국에 가져와서의 수리비까지 고려해도 많이 저렴했다. 그리하여.. 이 악기는 나에게로 오게 되었고, 수리하지 않고 대충 써보려고 했으나, 가져온 지 하룻만에 지판 분리라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여, 지판을 올리고 브릿지를 교환하는 수리를 거치게 되었고, 수리 후에는 상당히 놀랄만하게 음질이 개선되었다.

악기가 온 것이 4월 초이니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사용 후의 총평은 매우 만족. 일단 악기가 손에 맞으니, 음정 잡는 것이 훨씬 부드럽다. 특히나 겹음을 연주할 때 훨씬 좋은 것은 사실. 악기의 소리 크기는 사실 비교를 할 수가 없다. 4/4라고 해도 워낙 차이가 있으니까.

이 악기는 세팅을 제대로 하고 나니 소리는 더 좋아 졌고 커졌는데, 아직도 브릿지나, 사운드포스트를 워낙 좋지 않은 걸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악기 사이즈가 작은 것에 비해서는 소리가 시원시원하고 울림이 좋다. resonance가 좋다는 것은 나같은 초보에게는 참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운지를 했을 때 제대로 운지가 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7/8을 써보고 나니, 사이즈가 작다고 해서 특히 소리가 작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악기가 음량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손가락이 짧아서 연주가 힘들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7/8을 적극 권하고 싶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리사이틀을 할 것이 아니라면, 사실 악기의 음량은 아마추어에게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인데, 굳이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를 붙들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내가 살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문제는, 7/8에 익숙해진 손가락으로는 연주해 볼 수 있는 악기의 숫자가 줄어들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나중에 더 좋은 악기들을 만나게 되면, 분명히 대부분은 4/4일테니, 7/8로 연습을 해온 나로서는 연주가 힘들 수도 있을 듯하다. 글쎄... 그건 내가 좀 더 악기를 잘하게 되면 또 극복가능한 문제가 아닐까? 같은 4/4라도 차이가 많이 나곤 하니까...

나중에 좋은 사진기를 구하게 되면 악기 사진을 올려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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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괴짜 (Freaks of disordered thought)

(Published in
The Strad, October 2003)

헨리의 사전은 훌륭한 바이올린 제작자들에 대한 찬사로 가득차 있지만, 형편없는 제작자가 나타나면 그는 점잖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Alan Coggins가 그의 뛰어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Henley의 Universal Dictionary of Violin and Bow makers에 대한 글입니다.
**헨리의 책에서 인용된 부분은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고, 배경색과 글자색을 다르게 처리하였습니다. (예시)


"헨리"라는 말을 현악기와 관련된 세계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에 언급한다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성공한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교수, 그리고 작곡가의 이미지는 아닐 것이다. 대신에 사람들은, 'Universal Dictionary of Violin and Bow Makers' 라고 옆에 쓰여져 있는, 두껍고, 무거운 책을 불가피하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 책은 전세계의 바이올린 제작자들, 딜러들 그리고 수집가들의 서재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어 지는 책이고, 약 9,000명의 제작자들의 정보가 들어 있는 표준화된 참고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단지 "헨리"라고 언급되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윌리엄 헨리는 사실 12살의 나이에 연주여행을 시작했던 재능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신동 파가니니 (The Wonder Boy Paganini)라고 불려졌는데, 이는 단지 바이올린에 대한 그의 재능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정확히 파가니니가 태어난 날로부터 100년뒤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그는 런던에서 오귀스트 빌헬미와 같이 공부했고, 그 둘은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때때로 빌헬미의 집에서 함께 연주하곤 했다.

헨리는 성공적인 연주경력을 가졌었고, 결국은 런던의 로얄 아카데미에서 작곡교수이자 바이올린과 주임교수로 임명되었다. 그의 다양한 연주, 작곡, 교수생활 이외에도, 그는 또다른 분야에 위대한 노력을 기울였었다 - 즉, 바이올린과 활 제작자들의 총괄 목록의 작성이라는 분야이다. 헨리는 개인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악기들을 검사하고 시연해 보았으며, 성공적인 음악가로서, 그의 의견은 아주 권위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성격의 정보를 모으는 것은 확실히 분명한 종착점은 없는 것이다. 헨리는 그의 작품을 마무리지어 출판할 수 있기 전인, 1957년에 사망했고, 이 사전은  작가의 노트로부터 딜러인 시릴 우드콕에 의하여 만들어 졌다. 이 책은 약 3년 뒤 1959-60년에 최종적으로 출판되어 졌고 최초에는 5권으로 되어 있다가, 1973년에 우리에게 친숙한 1권짜리로 재 출간되었다.

이 사후 출판이라는 상황은 이 책의 가장 명백한 결점들 중 하나로 귀결되어졌다. 우드콕은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책이 포함시키고 싶었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중 많은 것들이 헨리에 의하여 악기 자체와 악기의 음질에 대한 헨리 자신의 직접적인 평가에 근거를 두어 쓰여진 것인 반면에, 헨리가 아마 연주는 커녕 결코 본 적도 없었을 악기들에 대한 언급도 이 책에는 존재한다.

이들 기록들은 모두 너무나 명백하게 그 제작자들 자신들에 의하여 쓰여진 것들이며, 그리하여 문제의 소지가 있다. 바이올린 제작자들에가 그들 자신의 작품을 평가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마치 정치가에게 그들이 의회에서 유용하고 효율적인 구성원인지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거의 확실하게, 우리는 매우 장황하고 열렬한 답변을 얻게 될 것이다. F.E. Davenport에 대한 기록을 부분적으로 보면:

뉴욕에서 작업, 1908-1914... 전문적인 제작자는 아니지만, 그때까지감정가들이 가장 흥미로운 이탈리안 모델들이라고 하는 몇몇 악기를 제작하였다. 우수한 제작 솜씨는 크레모나의 중요한 제작의 선구자들의 것과 거의 맞먹는 것으로 평가되어진다. 놀라운 - 절대적으로 새롭지는 않으나 건강하고 강한 톤 - 후세에 의하여 격찬되어질 일종의 투명함을 관철시키는 음질 이라는 결과를 달성하였다

헨리가 미국에서 일하는 이 아마추어 바이올린 제작자에 관하여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정말로 믿겨지는가? 우드콕은 이런 과장된 기록 (출처도 없이)을 삽입하였을 뿐아니라, 또한 합리적인 길이로 그러한 기록들을 편집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A.H.Merrill에 대한 기록이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하게 되는 것도 발견하게 되며 (이는 그란치노나 로제리에 대한 기록의 길이보다도 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리노이의 엘긴에서 1853년 출생. 프랑스-영국계. 1872년까지 19년 동안 보통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우여곡절을 겪음. 바이올린 음악에 매혹되어 그는 Hopf - "성숙되기 전에 수확한" 괴물같은 소리가 나는 -를 한대 구입. 주로  "활기를 주고 취하게 하는 음료"를 자주 마시라는 것이 주요한 가르침이었던 것 같은 선생으로 부터 6번의 레슨을 받음.

- 그리고 기타등등. 이런 기록을 읽어 나가면서, 우리는 결국 많은 그의 악기들이 때때로 터무니 없이 가격이 매겨진 크레모나 악기에 대항하여 왔고, 가장 성공적인 방식으로 시련을 극복하여나갔다 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에 다소간 감명을 받을지도 모른다, ... 1924년까지 10,000개의 악기를 수리하는 놀라운 기록을 가지게 된다.

다행히도 이러한 자기평가는, 불가피하게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꽤 쉽게 알 수가 있다. 그 제작가들은 위대한 크레모나의 마스터들과 유사한 (때로는 능가하는)음질을 가진 악기들을 제작하였거나, 또는 그들은 '잃어버린 크레모나 바니쉬'를 재발견했다 - 사실, 많은 제작자들이 둘 다 이루어 냈다고도 쓰여져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러한 주장들은 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바바리아의 Zacharias Fischer는 분명히

... 그의 주장에 따르면, 스트라디바리와 슈타이너와 동등한 품질로 제작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이러한 과정은 가끔 해로운 화학물질을 넣어 목재를 오븐에 가열하여 시도되어 졌으나 무익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1786년이었는데, 스트라디바리의 사후 겨우 50년이 지났을 때였다. 스스로 평가된 기록들은 의도된 대로의 효과를 항상 거둔 것은 아니었다. 뉴질랜드의 George Nicoll 은 독자들을
완전히 혼동시키는데에 성공했을 뿐이다. 그는 그가 다음과 같다고 믿었는데:

...과학적인 바이올린 제작의 표준적인 작업이 결과적으로 계획되어 질 수 있는 핵심을 제공했다. 길이와 넓이의 2차원만을 다루면서, 유클리드의 조화론을 공부하였고 길이에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깊이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현대의 수학자들은 '생명' - 즉, 진동과 더불어 있는 문제' - 의 근원으로부터 너무나 벗어나게 되었었다. 그의 바이올린을 이 극과 극의 상대성원리에 맞게 디자인했고, '순수한 이탈리아의 음색'의 생산으로 귀결되어 졌다.

일단 의심스러운 기록들을 인식하는 법을 배운 후에는, 헨리 자신에 의하여 쓰여진 기록들을 읽음으로서 이 사전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다. 그의 저술은 교양있는 평가, 유머 그리고,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가차없는 비판의 매력적인 결합을 보여준다. 그는 특히 간결하게 문장을 잘라내는 데에 재능을 보여주었고, 가치없는 대상에 대하여 너무 많은 단어들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분명한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예를들어, 그는 우리에게 요셉 슈타이너 (Joseph Steiner)  (1)가 '미텐발트에서 1792년에 일을 했고. 절대적인 평이함으로 악명을 얻었고. 형태를 망가뜨리고 음질에서 가치가 없었다'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덧붙이기를: 때때로 "미텐발트 ("Mittenbald")"라고 레이블에 적었던 무식한 사람. 헨리는 값싸고, 대량 생산되는 악기들에 대해 쓸 시간이 없었으며, 그의 이러한 악기들에 대한 기술은 특히 매서웠다. Heureux의 레이블이 붙어서 판매되는 바이올린에 대한 그의 평가를 보자: 

"기분좋은 (pleasing)" 또는 "좋은 인상을 주는 (prepossessing)"의 뜻을 가지는 그 이름은 매우 부적절하며, 판매자의 뻔뻔함이 제작자의 형편없는 재능 만큼이나 크다. 생동감이라고는 없는 나무로 된 가면; 현저히 관상학적으로 빈곤한 모습. 가늘고 작은 음색은 좋은 활로 연주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그리고 때때로 그의 기록은 너무나 가혹하여, 우리는 그가 그 제작자에 대하여 개인적인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그의 William Beale의 작품에 대한 의견은 상당히 악의적이다:

정신없고 무질서한 생각을 가진 괴짜. 아웃라인, 스크롤, 사운드홀은 혐오스럽도록 못생기게 만들어 졌다. 목재는 평범하고, 바니쉬는 재앙이며, 소름끼치게 공허함 음색을 가졌다.

 

제작자에 의하여 쓰여지지 않은 것이 분명한 기록이다. 가끔 헨리는 그의 경계심을 약간 풀고는 조금 더 급진적인 의견을 그의 기록에 슬며시 집어넣기도 한다. Adam Friedrich Grimm 에 대하여 그는 수 년동안 많은 바이올린 수리사들의 머리 속을 스쳐갔을 생각을 표현한다:

장인의 솜씨는 매우 비참한 지경이다. 때로 퍼플링이 없다. 1기니 정도의 가치밖에는 없는 메마른 음색. 망치의 쿵하는 소리는, 이러한 어리석음을 부수기 위하여 사용된다면 (우리 중 몇몇에게는) 비음악적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M.E. Lantez의 경우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의 인내심과 유머가 그를 완전히 떠나서 상당히 무뚝뚝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일 뿐이다:

그의 악기들 중 다수는 예민한 연주자들이 소화불량에 걸리게 할지도 모르는 음색을 가지고 있다. 싸구려 작업은 바보 멍청이들이나 고마워 할 것이다.

많은 헨리의 기록들은 혁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그는 악기의 디자인이나 형태라는 측면에서 실험적인 '개선'의 수많은 예를 묘사하고 있으며, 이런 예들을 전통주의자들의 완벽한 경멸을 가지고 대한다. 사실, 영원히 사랑받는 악기들의 한정된 숫자라는 점을 보면, 그의 이러한 의견은 옳은 것이었다. 그의 평가는 차분한 정중함 - Regina Geigenbau에 대한 평가 (아래 참조)와 같은 - 으로부터 완벽한 경멸 - 아래 기록에서 보듯이 영원히 저주받은채로 남은 John J. Hawkins의 경우 - 까지 다양하다.

Regina Geigenbau:

어퍼와 로우어 립이 음색을 제어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앞판과 뒷판은 너무 아칭이 져서 옆판에서는 결합되어 있을 정도이고, 허리의 립은 보통의 바이올린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남아있다. 소리의 방출은 보통방식으로 제작된 악기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상한 윤곽의 바이올린들은 사실 진지한 연주자들이 고려할만한 가치는 없다...



John J. Hawkins:

1800년 런던에서 바이올린의 새로운 형태로 특허를 받음. 옆판이나 뒷판이 없고 단지 강한 립이 앞판 아래로 이어져 있는데, 그 위에는 사운드포스트가 스프링에 의하여 앞판을 누르며 세워져 있다. 단순한 음량의 크기는 이 광기어린 구조에 의해서 망가지지는 않았으나, 아름다운 울림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그의 완전히 어리석은 혁신을 적용하기 위하여 진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파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가들 중 적어도 하나는 올바른 궤도에 잘 올라서 있었던 것 같다. John Frederick Grosjean은 돌아보면, 광물매장층에서 초기의 시굴을 시도했던 것과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바이올린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현악기의 음질을 개선하고자 했던 수많은 기인들 중의 하나였다. 1837년에 바이올린의 표면을 아교와 유리가루로 코팅을 하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받았다. 이 터무니없는 혁신은 이어지는 악평들로 인하여 그에 알맞는 영역으로 가게 되었다 - 그것은 망각의 영역이다.'


이런 종류의 정보를 모으고 기록하는 것은 매우 지루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몇몇 작은 일화들이 연구자의 마음을 밝혀주기도 하는데, 헨리는 이런 좋은 이야기들이 바이올린제작자들의 작업에 꼭 관계가 없을지라도 가능한 곳에서는 포함시키기도 하며 즐겼다. 그리하여, 우리는 별났던 Joseph Merlin에 대한 훌륭한 묘사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770-1783년 런던에서 작업. 소호광장에 있는 코널리부인의 칼리슬 저텩에서의 가면무도회에서 바퀴달린 스케이트를 타고 스스로 제작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500파운드 짜리의 거울앞으로 돌진하여 거울을 산산조각으로 부수고 그의 악기를 조각조각나게하였고, 스스로도 엄청난 부상을 입어 그 명성을 획득.


그리고 Thomas Calow의 비극적인 이야기:

참을성이 없는 경향을 가진 무책임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하기로 하면 훌륭한 수리작업을 해내곤 했다. 1905년, 겨우 37세의 나이에 더블베이스 현에 목을 매어 자살.


물론 바이올린 제작자에 관한 어떤 책도 '초자연적인 계시'의 이야기 없이는 완전할 수는 없을 것인데, 그것은 Heinrich Ohlhaver에 의하여 제작된 Revalo 바이올린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다. Heinrich Ohlhaver는:

..."영적인 집회에서, 스트라디바리의 유령이 그에게 나타났고 그의 비밀을 알려 주었고, 거기에서부터, 그 비결의 현대 바이올린으로의 이전은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쉬운" 것이 었다."고 말했다..



또는, 초자연적이면서 실험적인 접근법을 결합시키려고 했던, 석탄 광부였던, Ralph E. Fishburn도 예가 될 것이다:

외관상 성실한 열렬한 심령술사로서, 그는 靈媒의 인도를 받아 스트라디바리의 두 대의 바이올린의 환영을 하나의 악기로 만들었다. 그는 이전에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3개월만에 악기를 한 대 제작할 수 있었고, 이를 '비올라-바이올린'이라고 명명했다.아웃라인은 분별있는 실물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확실히 꿈속에서 본 환영이었다.


이 책에서의 수 많은 비판적이고 불손한 기록의 즐거운 예시들에도 불구하고, 헨리가 제작자의 작업을 훌륭한 것으로 여겼을 때의 그의 의도는 확실할 것이다. 그의 시적인 서술방법은 다시 나타나지만, 간결함의 한계는 더이상 필수적이지 않으며 그의 생각을 더욱 더 펼쳐나간다. Giovanni Francesco Pressenda의 경우가 그러할 것이다:

그의 예술에 관해 광대한 사고의 폭을 지닌 심오한 제작자로, 크레모나와 프랑스 학파의 예술적 기교를 완전히 흡수하였고 그의 바이올린에 다양한 특성을 스며들게하고, 형상화시키고,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최상의 질서로 특징지어지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고, 단순한 탁상공론은 삼가했으며, 그 자신을 전적으로 이전의 제작자들의 법칙에 제한시킴으로서 창조를 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느꼈다.


그는 한페이지가 넘도록 이런 식으로 계속 서술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우리가 Pressenda의 악기들이 후대에게 이탈리아의 바이올린으로 여겨질 것이라고 주장할 때에 이것이 과장된 허풍으로 비난받지 않기를 희망한다,

 라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더 활발한 많은 의견이 이 책에 포함되었다는 점은, 우드콕이 헨리의 서술을 그의 사후에 출판하여 얻은 가장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할 것이다. 만약 헨리가 살아서 이 사전의 마지막 초안을 검토했다면, 얼마나 많은 이런 기록들이 수정되고 편집되어 없어졌을지 우리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의 존재는 책에 생명과 흥미를 넣어 주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이 책에서 전화번호부를 대할 때에 기대하는 정도의 흥분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Universal Dictionary of Violin and Bow Makers는 감동할 만한 성과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이올린 제작자들에 대해 이것과 같은 책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늘날이 소송이 많은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다면, 앞으로도 이런 책은 없을 것이다.

The Universal Dictionary of Violin and Bow Makers는: Amati Publishing Ltd, 1 Northfields, Speldhurst, Tunbridge Wells, Kent TN3 OPL, UK Tel: +44 1892 870319 에서 구할 수 있다.

Alan Coggins는 호주 시드니 부근의 블루마운틴에서 Adele Beardsmore와 같이 일하는 바이올린 제작자이자 수리전문가이다. 그는 바이올린의 여러가지 측면에 대하여 저술을 해왔고 The Strad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한다. 그의 글들은 그의 홈페이지에서 읽어볼 수 있다. 앨런은 또한 호주의 현악기 제작자들에 대한 책을 쓰고 있으며, 온라인에서 과거의 현재의 500명 가량의 호주 제작자들의 정보를 담고 있는 Directory of Australian Violin and Bow Makers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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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dge fund plays on theme of violins

헷지펀드가 바이올린을 주제로 연주하다 (중의적인 표현으로, 헷지펀드가 바이올린들을 (투자의) 주제로 삼다.. 라는 의미도 있겠네요.)


올드 바이올린에 투자하는 헷지펀드의 금액이 천백만불 (약 110-120억원)이 되었는데, 전에는 수집가들이나 애호가들의 독점적인 영역이었던 특이한 자산들에 최근에는 투자자들도 돈을 투자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런던의 바이올린 딜러이자 수리가인 플로리안 레온하드는 "Fine VIolins Fund"가 5천만불 (약 5백억원)을 모아 8%-12%의 목표 수익률을 가지게 되면 그 펀드에 투자를 할 생각이다. 그 펀드는 아마 주식과 채권 이외의 자산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자산들의 종류들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일 것이다.


이전에는 금융시장과는 별 관련이 없었던 자산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와인, 미술품, 운송, 그리고 심지어는 축구선수들에게까지도 투자하는 헷지펀드들이 만들어졌다.


"재무적으로, 이것은 엄청나게 안전한 장기 투자입니다"라고 레온하드씨는 말한다. "이것은 투자자로서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시켜 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펀드는 또한 박애주의적인 목적도 가지게 되는데, 펀드가 사게되는 바이올린들은 유망한 음악가들에게 대여되어 그들의 가치에 기여를 하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와인보다 훨씬 낫지요. 와인은 사라져 버릴 수 있어요. 또 미술품과는 달리 바이올린은 유행도 타지 않지요."라고 그는 말했다.


바이올린들은 미술품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큰 은행들이나 부유한 수집가들이 취미나 투자품으로 여기며 구입해왔었다. 1992년에 FoxPro라는 소프트웨어를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팔았었던, 데이비드 풀턴의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수집품들은 최고의 수집품들 중 하나이다.


투자자들은 지난 반세기동안 보여졌던 악기값의 폭등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최근에 각각의 악기들 - 가장 귀한 것은 수백만불 (수십억원)에 달한다 - 을 사서 재능있는 음악가들에게 대여하려는 목적으로 같이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투자자들은 시장성이 부족하고, 무엇이 앞으로 가격을 오르게 할 요인이 될지 예상하기 어려운 자산에 돈을 넣어 놓는 위험성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다. 작년에 런던의 우표딜러인 스탠리 기본스가 우표에 투자하려는 헷지펀드를 시작하려고 했던 계획이 무산된 것을 보면 그런 우려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한 때 애매한 자산들이 주류가 되기 시작하기도 한다. 재보험, 대출, 카본 크레딧 (배기가스 배출 허용한도), 그리고 영화산업투자 등이 주목받기 시작한 자산들이다.


몇개의 전통적인 헷지펀드들은 또한 더욱 특이한 자산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와인투자펀드의 이사인 피터 런쩌는 한 헷지펀드가 벌서 그의 와인펀드에 백만 파운드 (약 2십억원)를 투자했다고 말했다.


Hedge fund plays on theme of violins

By James Mackintosh

 

Published: May 23 2007 23:23 | Last updated: May 23 2007 23:23

 

A hedge fund investing in old violins has been pledged $11m (£5.5m) in the latest sign of investor willingness to put money into offbeat assets that were previously the exclusive domain of collectors and enthusiasts.

 

Florian Leonhard, a London-based violin dealer and restorer, is aiming to start investing the Fine Violins Fund once it has raised $50m, with a target of returning 8 per cent to 12 per cent a year.


The fund is perhaps the strangest in a series of new asset classes being created by investors trying to avoid stocks and bonds.

 

Hedge funds have been set up specialising in wine, art, shipping and even football players, demonstrating the appeal of assets that historically have not been correlated with financial markets.

 

Financially it is a dead secure long-term investment,” Mr Leonhard said. “It helps to be versatile in your portfolio as an investor.”

 

The fund will also have a philanthropic aim as the violins it buys will be lent to up-and-coming musicians, contributing to their value.

 

It is much better than wine,” he said. “Wine can go off. And unlike art, violins are not subject to fashion.”

 

Violins have long been bought alongside art by big banks and wealthy collectors as both hobby and investment. The Stradivari and Guarneri collection of David Fulton, who sold his FoxPro software to Microsoft in 1992, is among the world’s best.

 

More recently, investors have clubbed together to buy individual instruments – the rarest of which can cost several million dollars – to lend to talented musicians, in the hope that the big price rises seen over the past half-century will continue.


But some investors worry about the dangers of putting money into assets that are hard to sell and where there is difficulty in establishing what drives prices. Such reservations helped scupper plans last year by Stanley Gibbons, the London stamp dealer, to launch a hedge fund investing in stamps.

 

However, once obscure assets are becoming mainstream, with reinsurance, direct loans, carbon credits and film financing being given attention.

 

Several traditional hedge funds are also beginning to look at more exotic assets. Peter Lunzer, director of the Wine Investment Fund, said one hedge fund had already invested £1m via his fund.

 

Copyright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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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트릴로 유명한 타르티니는 1692년에 태어나서 1770년까지 살았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지요. 타르티니가 사용하던 활의 사진을 담아 놓은 곳이 있어서 사진을 퍼왔습니다.


출처는 http://www.baroquebows.net/contenuti/tartini.html#



타르티니가 쓰던 활 중에 남아 있는 것은 두 개. 하나는 스네이크우드로 만들어진 33그램의 각활입니다. 프로그는 5.8그램이고 팜우드로 만들어 졌으나, 원래의 것은 아니라고 하구요. 같은 스네이크우드의 프로그가 달렸다면 8그램정도가 되니까 활 전체의 무게는 활털무게 2그램을 포함하여 44그램... 엄청 가벼운 활이었네요.


위 설명의 활의 보다 자세한 사진 (아마 젊은 시절에 쓰던 것)


두번째 활은 완번한 바로크활이라기 보다는 클래시컬 보우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어두운 색의 페르남부코의 라운드활입니다. 무게는 34.9그램. 팜우드로된 프로그가 같이 전시되어 있지만 맞는 것 같지는 않는다고 하고.. 어쨌거나.. 전체적인 연주시 활무게는 역시 가벼운... 45그램 정도..

두번째 활의 보다 자세한 사진 (좀더 나이들어서 사용하던 활)



오리지날과 카피본의 비교 사진.. 위에서 두번째가 오리지널이고 나머지는 활을 팽팽하게, 또는 느슨하게 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좀 더 자세한 카피 활의 사진들입니다...


스네이크우드의 각활인데 손잡는 부분은 라운드이고 저런 클립-인 프로그의 형태는 풍부한 소리를 나게 한다는 군요. 무게는 44그램. 길이는 71.3센티, 활털과 활대와의 간격은 2센티.



다음은 여러가지 바로크 활들의 그림입니다. 역시 같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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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여러 종류의 활들 사진^^

D. Badiarov라는 제작자의 바로크활 사진들입니다. 그분의 웹사이트에서 퍼왔습니다^^;


1. 클립인 프로그가 있는 바로크활은 17세기 초에서 바흐 후기까지의 연주에 쓰이고 18세기 전반부에도 여전히 사용되었답니다.

2. 스크류가 있는 바로크활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부의 음악연주에 쓰이고

3. 클래시컬 보우는 타르티니, 모차르트, 하이든의 시대에 쓰입니다.

4. Bone-tip이 있는 활은 초기 바로크시대에 유행했다네요.



Early baroque bow with a clip-in frog.

Baroque Violin Bow

Classical bows for the period from Tartini till Haydn

It is based on the original belonging to Sigiswald Kuijken.

Archaic Baroque Violin Bow

An early baroque bow with bone tips - This is an innovative model based on historical evidence.
It was in use during ca.100 years from the 2nd half of the 16th century till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he tip of the bow is an ingenious invention, solving two problems at once - a wider spread of hair to improve the sound at the bow tip, and an easy re-hai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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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제가 첼로 까페에 올렸던 바리톤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흥미로운 악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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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yton에 대한 사진과 설명을 모아 봤어요^^ (출처: 주로  위키피디아)

 

1880년대 그려진 바리톤 그림

Esterhazy왕자 바리톤의 카피. 아이젠슈타트의 궁전에 전시.


 

바리톤은 고악기, 찰현악기고 18세기말까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많이 사용되는 악기는 아니었는데, 이유는 연주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크기는 첼로와 비슷합니다. 7개의 (가끔은 6개의) 켜는 현과 9개에서 24개의 공명현 (주로 12개)이 있습니다. 켜는 현으로는 거트현이 사용되고, 공명현은 연주자가 엄지손가락으로 뜯어서 연주됩니다.  


 

하이든의 바리톤 삼중주곡 


바리톤 연주곡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하이든에 의해 쓰여진 175개의 작품들입니다. 하이든은 자신의 후원자이고, 바리톤 연주자인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왕자를 위해서 이 곡들을 작곡하였죠. 이 중, 126은 비올라, 첼로 그리고 바리톤을 위한 트리오입니다. 이 곡들은 1766년에서 1775년 사이에 작곡되었습니다.  

이들 트리오는 상당히 친밀감 넘치고 사적인 분위기의 곡들이라고 합니다. 왕자가 바리톤을 비올라를 하이든이 연주하였겠죠. 왕자가 쓰던 바리톤 (위 그림 참조) 은 7개의 켜는 현을 가지고 있고 베이스 비올라 다감바처럼 조율을 하여야 하는 악기입니다. 이 하이든 곡들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는 군요. 그러나, 매우 다양한 멜로디와 질감있는 아이디어, 위트넘치는 악기 운용을 보여 준답니다.  


현대의 바리톤 연주들 

바리톤은 19세기에 완전히 잊혀진 악기였습니다만, 20세기에 정격연주운동이 부흥하면서 새로운 바리톤들이 만들어지고 연주되었습니다. 레코딩들도 생겨났습니다. 현대 연주자들은John Hsu, Kazimierz Gruszczyński, Jeremy Brooker, Roland Hutchinson 등이 있습니다. 2009년경에는 하이든의 바리톤곡 전곡 녹음도 나올거라는 군요. 에스테르하지 앙상블은 그 곡들을 바로 에스테르하지궁에서 연주한답니다.


참고할 만한 링크

International Baryton Society

Baryton by John Pringle

Esterhazy Ensemble


 

최근에 만들어진 바리톤

BARYTON BY JOHN PRINGLE (1991) 아래 보시면 가격이 7천불이라고 나옵니다^^


Excellent condition, carved spruce top, flamed maple sides and flat back, ebony fingerboard with seven tied-on frets, ten metal strings run through the hollow neck to be plucked to provide lute-like accompaniment for the six bowed strings, inlaid purfling surrounds the top and back and one lattice decorated soundhole sits in the center of the top while flame-shaped soundholes replace the traditional f-holes, carved likeness of a mustachioed and horned man (Pan? El Diablo?) decorates the headstock in lieu of a scroll, ebony tuning pegs, a fascinating instrument with roots in the 1600's, handcrafted in the USA by renowned luthier John Pringle, on consignment, with front-loading upright HSC  
110U-4726... - No longer available - $7,000.00



에스테르하지 앙상블의 연주모습입니다.

이 분들이 하이든의 바리톤 트리오를 녹음하고 있답니다.  

바리톤을 연주하는 Michael Brüssing (Barytone, Baroque Cello)


바리톤 연주 동영상은 여기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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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웰백님이 올리신 Fulton씨(http://cafe.naver.com/violin79/17000). 그 분의 악기 목록을 Cozio.com에서 뽑아봤습니다. sheilascorner에 있는 악기들 보다 몇개 더 많더라구요^^ 첼로에 비올라... Fulton이라는 이름은 가끔 cozio에서 악기 검색하면 나와서 누군지 상당한 재력가로군.. 하고 생각했었었죠...  


http://www.cozio.com/Owner.aspx?id=152에 가셔서 ID를 클릭하시면 각각의 악기의 설명도 보실 수 있습니다^^

ID Maker Type Year Name Owned From Owned In Owned Till
2324 Guarneri, Pietro (of Mantua) violin 1698 ex-Shapiro 1981 2002  
212 Stradivari, Antonio violin 1709 La Pucelle; Virgin, Maiden   2002  
1291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3 Baron d'Assignies 1997    
254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4 Sinsheimer; General Kyd, Perlman 1994 2005  
667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5 Marsick   2002  
1471 Stradivari, Antonio violin 1715 Baron Knoop; ex-Bevan 1992    
411 Guarneri del Gesù, Giuseppe violin 1734 Haddock 1993 1998  
417 Guarneri del Gesù, Giuseppe violin 1735 d'Egville 1998    
213 Guarneri del Gesù, Giuseppe violin 1737 King Joseph   2002  
214 Guarneri del Gesù, Giuseppe violin 1737 Stern; ex-Panette, ex-Balatre, ex-Alard 1994   2005
3016 Bergonzi, Carlo violin 1740c ex-Kreisler   2004  
256 Guarneri del Gesù, Giuseppe violin 1742 Lord Wilton 1999    
447 Guarneri del Gesù, Giuseppe violin 1743 Carrodus   2003  
793 Guarneri, Andrea viola 1676 Conte Vitale   2002  
278 Stradivari, Antonio cello 1713 Bass of Spain; Adam 1999    
2864 Montagnana, Domenico cello 1737 ex-George Gudgeon   2004  
1626 Guarneri, Pietro (of Venice) cello 1739c ex-Beatrice Harrison   2004  

요 아래 링크는 Fulton씨에 대한 약간의 백그라운드가 나와있는 셰일라스 코너 웹페이지입니다. 페이지 아래쪽에 풀턴씨에 대한 기사가 몇개 링크되어 있는데 재밌는 내용이 많습니다.... (단.. 영어라는것ㅡㅡ;;)..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떻게 악기병 환자 (악기 중독자...)가 되어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떻게해서 처음에 집 값보다 더 비싼 Pietro Guarneri of Mantua를 사게되고.. 스트라드와 델제수들을 사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구요.. 그래도 이 아저씨가 악기 사들이던 때는 악기값이 그나마.. 지금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던 것 같더군요...


바이올린의 투자가치에 대한 이야기 끝에 풀턴은 악기를 모으는 것이 "투자"가 아니라 "순수한 소비"라고 하더군요.. 자신은 악기를 모으기만 할 뿐, 팔지 않기 때문에...ㅡㅡ;;


그는, 자신을 수백년을 살고 있는 이 악기들의 단지 본인의 인생만큼 (몇십년간)의 보관자일뿐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악기를 들고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을때, 비행기가 떨어져서 악기가 파괴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사고가 나면 본인도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나 들더랍니다.. 진정한 악기애호가에요...^^


http://www.sheilascorner.com/collectordave.shtml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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