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고 분노하다가 이제 반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살면서 불의를 보고 눈을 감은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내가 다치기 싫어서, 귀찮아서 외면했던 일들이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그리고 나 스스로도 규칙을 어기고 불법과 불의에 동의하고 살았던 일도 무수히 많지 않았던가. 불법과 부정과 나태함과 무책임함 그리고 무능력이 이 아이들을 죽인 것이라면... 그건 바로 나 자신이 간접적으로 그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
어떻게 세상을 바꿔야 이런 일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희망의 싹이 굵어지질 않는다. 수십년 한국 땅에서 살아 오면서 이런 참사가 한두 번도 아닌데 유독 이번 일이 가슴이 아프고 유독 헤어나와 지지 않는 건, 딱 우리 아이들만한 나이의 예쁘고 착한 아이들이 너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변할 때도 되었는데 변하지 않는 이 사회에 너무 화가 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울고, 분노하고, 안타까워 하다가 다시 나를 돌아 보니, 나도 그렇게 이 사회에 동조되어 살고 있었다, 수십년간.
차선, 신호, 속도 위반을 하면서도, 괜찮아 난 지금 바쁘잖아. 설마 사고가 나겠어. 재수없이 걸리지만 않으면 돼.
카드 안하고 현금으로 하시면 깍아 드릴게요.. 라는 말을 듣고도 이 사람들 또 세금신고 제대로 안하겠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고작 돈 몇 푼이 아까워서, 네 그럼 현금으로 할게요.
그저 마케팅일 뿐이고 결국 상품 가격이 올라가거나 꼭 필요한 다른 퀄리티가 낮아지게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짜라면 줄을 서고, 사은품에 달라 붙고.
어처구니 없이 싼 상품은 그걸 생산하는 노동자 농민의 피라는 걸 알면서도, 이성적이고 올바른 소비 보다는 내가 한 푼이라도 더 아끼는 쪽으로 구입하고.
왜 한국은 법규가 모호한가. 규칙을 지키라는 건가 아닌건가. 실행방안도 없는 법은 뭐하라는 건가.라는 외국인 동료들의 질문에 더이상 창피해하지도 않고, 뭐.. 그래도 우린 살기 편한데. 법이라는게 융통성이 있어야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떠들어 대는 정치인들에게 정당한 요구와 비판 대신 무관심과 비웃음만 날리고.
내 아이들 기득권 계층에서 밀려 나지 말라고 결국은 사교육 시장으로 등떠밀고, 공교육이 망해가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그래도 내 아이들만은 어떻게든 잘 살게 해보자. 이기적인 생각만 하고.
재활용 분리수거... 귀찮아서 대충하고.
채식하고 싶지만... 나 사회생활하고 돈 벌어야 하니까라는 핑계로, 기름진 음식 먹겠다고, 해산물과 낙농제품은 무진장 먹어대고. 고작 고기덩어리 안먹는 걸로 위선 떨고.
그렇게 내가 눈감고 귀막고, 내 입에 맛난 것들을 집어 넣는 동안, 우리가 어릴 적 동경하던 선진국들과 이제 우리나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구나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동안 (심지어 나 같이 국가의식 없는 사람조차도), 사실은 이 사회가 구석구석 썩어가고 있었고, 나도 구석구석 같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걸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도, 정치단체도 다 산산조각 나서 감시는 커녕 본인들 숨조차 쉬기 힘들게 되고 있다는 걸 뻔히 보면서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손 한 번 잡아 주지 못했고, 내가 기껏 돕는다고 해봤자 이제 어쩌겠어...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이 아이들을 죽인거나 다름 없다.
구할 수 있었는데 어른들이 구하지 않았다. 라는 그 학교 어느 학생의 이야기가 그래서 너무 아프다. 그건 구조대책본부에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썩어 문드러진 선사. 정신 나간 선장과 선원들. 무능력한 정부에게만 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이 사회의 모든 "어른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나 같은 평범한 엄마 아빠들에게 당신들은 자기 자식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다.
사고가 나고 두번째 주말인데, 사람들은 벌써 외면한다. 누구나 가족을 잃는 경험을 하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쿨한 척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내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에만 감사하며 잊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적어도 나는 반성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그게 부끄럽지만 살아 남은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