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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연주법은 모든 음을 다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는다. 업보우에서 그냥 활 가는 대로 거친 소리를 내고, 중요하지 않은 음은 '0'으로 표시하고 정말 중요하지 않게 연주한다. 그런데 왜 그 음악이 아름답게 들릴까? 하나 하나의 음을 모두 반들반들 윤이 나게 연주하는 모던 음악에서 보다 더 가슴에 와 닿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게 훨씬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는데 또는 부서가 통폐합이 되어 당장 실직을 걱정해야 하는데, "긍정"의 힘을 믿자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지만, 그 긍정은 현실에 기초한 비판적 긍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긍정적인 것이 도를 지나치면 긍정이데올로기가 되는 듯하다. 긍정이데올로기를 팔면 돈이 되고 이익이 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회사나 학교나 조직에서는 늘 리더쉽 교육을 강조한다. 리더쉽을 길러야 성공할 수 있다는 둥... (그 성공이라는 게 뭔지 정의하고 말하라구...) 학생들, 신입사원들은 리더의 강연을 듣고, 리더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그들처럼 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리더'들이란, 잘 나가는 회사의 CEO거나 임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더쉽의 덕목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추진력이거나 긍정의 힘인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덕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 비판은 해봤자 너에게 도움되는 것은 없다구. 어차피 세상은 힘있는 사람들의 것이니 그들과 같아지려면 일단 세상을 받아들여봐. 네 능력으로는 그들과 같아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피해를 보지 않고 적당하게라도 살려면 그들의 가치관에서 바라봐야 한다니까. 비판이나 비난... 은 물론 안되고, 현실을 너무 현실로 바라봐도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은 없어.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져봐야 너만 우울해지고 너만 힘들어지는 거라니까.

 

이런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서, 학생들은 왜 내가 이렇게 선행학습으로 사교육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조금이라도 점수를 더 받기 위해 학원 과외 독서실 뺑뻉이로 살게되고, 직장인들은 말도 안되는 야근이고 부당한 대우여도 그냥 참고 '긍정'하며 산다. 그리고 역시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또 생각을 한다, 리더의 글을 읽으며, 또 각종 힐링 강연을 들으며.

 

모던 음악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정말 흠 없이 아름답게 흐르는 매끌매끌한 모던 클래식 연주를 들으면 (특히, 바이올린 독주라던가....) 가끔씩은 저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갑자기 그 연주가 정말 이 세상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위 상위계층들의 삶, 또는 중산층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모던 클래식 연주는 묘하게 닮아 있는 것 같다.

 

버려야 하는 것은 버리고, 못생겨야 하는 것은 못생긴 채로 두고, 항상 매끄러울 수도 항상 예쁠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 아둥바둥 하는 것을 멈추고 조용하게 나에게 중요한 것이 뭔지 생각해 보는 것. 그걸 할 수 있게 되면 바로크 연주도 잘 할 수 있게 될까?  (지금 게을러서 연습 안해고 연주 잘 못하는 걸, 또 모던한 세상 때문이니 어쩌니 하면서 핑계대고 있는 게지... 그러니까 긍정적이지 못해서 연주도 못하는 거라구!)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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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에서 세무조사를 받아 보거나 세무 관련 일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세무조사는 일단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회사는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세무조사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생각이 그 점에서는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규모가 크고 나름대로 기업철학도 가지고 있고 하는 회사들 중에는 예전과는 달리 법규에 맞는 올바른 세무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회사들도 많다. 제대로 법규에 맞추어 신고하고 똑바로 세금을 내는 것이 오히려 기업을 잘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많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100% 철저하게 신고하기란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쉽지 않고, 워낙 복잡한 거래도 많고, 또 법 자체도 어렵기 때문에 잘 몰라서 제대로 세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소위 말하는 '탈세'가 아니라, 선의를 가지고 일 처리를 했었지만, 실수로 또는 법률에 대한 오해와 무지로, 또는 여러가지 process적인 문제로 인하여 제대로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생각보다 매우 많다)가 많다는 것이다. 이럴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문제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 대부분의 회사들에서 지금까지 들어왔던 이야기는 "내부적으로 문제에 대한 보고는 하되 수정신고나 추가납부는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금액이 미미한 경우에 수정신고를 하겠다고 관할 세무서에 연락을 하면 일선 공무원들 중에는 가뜩이나 과중한 업무에 별로 크지도 않은 세금을 고쳐서 내겠다고 하는 납세자를 귀찮아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이렇게 열심히 수정신고를 해봤자 나중에 세무조사 나오면 어차피 조사팀에게 어느 정도 실적을 "채워드려야" 하는데 미리 내서 좋을 것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현행 세법 하에서는 미리 자진 수정신고납부를 한다고 하여도 가산세가 크게 줄어 들지도 않는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가 큰 경우에도 사실 수정신고를 통해 자진납부를 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위와 같은 이유가 대부분이고, 세법이 가끔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조세심판원이나 법원에서 "다퉈 볼 만한" 내용이라면 자진신고 보다는 기다리는 편을 택하는 회사가 대다수이다.

 

더구나 국제조세와 관련한 이슈는 전문가가 많지 않고, 국내법 뿐만 아니라 조세조약의 해석과도 관련이 있으며, 또한 외국법인의 경우 한국 세무에 밝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세무 신고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 또 세무 신고를 뒤늦게 하려고 해도 외국법인이 한국 세무서에 등록하고 세금을 몇 년치 소급해서 낸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 될 수 있고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두는 경우도 많다. 또 이렇게 세무신고가 제대로 안되었다고 하더라도 국세청에서 이런 문제를 모두 찾아내는 것도 역시 쉽지 않다. 국내 사업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외국법인들의 거래를 하나하나 추적하기에는 인력도 자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꽤 사업을 크게 하는 외국법인에 대한 본격적인 세무조사를 하는 경우라던가 국내 지점이나 법인이 존재하여 그에 대한 조사나 서면검토 등을 하면서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세청에서는 한국 세무에 대한 일반적인 납세안내 정도를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 하에서, 가만히 있으면 잘 알 수도 없을 세무문제를 검토하고 그걸 다 뜯어 고치겠다는 회사가 있으니..... 그게 바로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곳. OECD guideline이나 국제조세 원칙에 비추어 한국에 귀속되어야 할 소득이 잘 못 계산이 되었고 국내 소득 인식 방법이 틀렸다는 이유로, 또는 국내에서 일정기간 엔지니어들이 일을 하였으나, 세무신고 대상인 줄 몰라서 신고를 못하였다는 이유로, 또는 국내계열사 A에서 세금을 모두 납부하고 의무를 다하였으나, 사실 외국계열사 B에서도 역시 세금을 내는 것이 "이론적으로" 옳다는 이유에서... 수정신고를 하고 결코 적지 않은 가산세 등을 납부하겠다는 회사. 회계법인에서도, "그걸 꼭 신고납부하셔야 겠습니까? 오히려 세무서에서 이상하게 생각할텐데요"라고 난색을 표하기도 하고, 일선 세무서 담당관이 이해하기 힘들어 오히려 납세자가 친절하게 이러저러한 점이 잘못되어 신고하는 거라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한국에서는 자진신고를 하는 일이 흔하지 않고 별다른 혜택도 없다라는 점을 외국 분들에게 설명을 하는데 그 때마다 놀라운 점은, senior한 직책을 가지신 분들은 모두 모두 한 입으로 "we should do the right thing"을 말한다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신고 자체도 어렵고 내부 조직에서도 이렇게 수정신고납부를 하려면 여러 사람이 고통스럽게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엇보다 요즘처럼 cost saving을 모든 곳에서 외쳐대는 와중에 비용지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본인의 실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Tax 조직에서 leadeship position에 있는 분들이 "고칠 것은 다 고치고 올바르고 깨끗하게 하자"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자진신고납부를 해봤다 가산세 몇 푼 줄여 주는 것도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해도 거의 모든 분들은 올바른 길로 가자고 이야기한다.

 

그 분들이 특별히 도덕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그들의 경험상 문제는 묵혀봐야 곪아터지게 마련이라는 점을 알고 있고, 특히 곪아서 터지는 경우에는 단지 돈만이 아니라 회사의 reputation이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단지 비용절감만이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고 compliance도 동등하게 아니면 오히려 더 중요한 목표라는 점이 회사의 문화로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이런 경우를 볼 때마다, 한국 실정을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어차피 세무조사 나오면 내야할 세금인데... 이런 다고 누구도 고마워 하지 않을텐데... 이런 것 아니어도 우리회사는 충분히 깨끗하고 투명한 회계처리를 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곤 했었다. 너무 철저하게 하려고 한다며 가끔 비웃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바로 며칠 전, 또 다시 어느 분이 conference call에서 강한 어조로 "We should do the right thing"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렇지... 그게 더 중요한 것이지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한국 실정이 그러니까 그것에 맞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것이 맞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었는데.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단지 세금일 뿐이지만,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옳은 길을 가야 한다는 그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별로 상관도 없는 것을 연결시켜 생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약삭빠르게 사는데 혼자만 옳은 길이라면서 가봐야 손해만 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서 착한 아이들은 죽고 약삭빠른 선원들은 살아 남았겠지만) 당장은 어렵더라도 지금 하나씩 바꾸지 않으면, 지금 작은 것이라도 올바른 방법을 찾지 않으면 결국은 더 많은 착한 사람들이 다치게 될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결국은 한국 전체가 침몰하게 될 수도 있다.

 

(살짝 덧붙이자면, 이 회사의 모든 분들이 또는 모든 부서가 늘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또, 가끔 보면 많은 사람들이 소름끼치게 미국적이고 경쟁적인 사고방식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비인간적인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디서건 최소한 "법규"는 지킨다. 그리고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건 정말 최소한이지만, 나는 이런 최소한의 compliance도 가끔 충격적으로 교훈적으로 느껴지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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