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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두루푸의 내한소식을 듣고 리사이틀을 보러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좋은 자리 다 나갔을 것 같아서 그만두고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11월 3일 공연도 볼까 했지만 이미 매진되었다는 이야기에 역시 포기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라두루푸의 한국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협연자가 바딤레핀으로 바뀌었단다. 트위터에 그 소식이 뜬 걸 보고 표를 보러 들어갔더니 그간 취소된 표들이 몇 장 있길래 그냥 한장 사버렸다.

B석치고는 괜찮은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앞에 앉은 아저씨가 어찌 키도 크고 내 시야를 잘 가려주는 절묘한 기술을 가지고 계시던지....; 무대가 1/3밖에 보이지 않은 채로 두 시간 넘게 공연을 봐야만 했다는...;ㅁ;

프로그램:
Sibelius, Violin Concerto
Mahler, Symphony No. 1 "Titan"

바딤레핀의 사운드는 시벨리우스의 시원한 멜로디에 딱 잘 어울리는 음색이었다. 약간씩 불안불안한 부분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사운드와 뛰어난 테크닉이 받쳐주기 때문인지 큰 무리는 없이 진행되었다. 1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하모닉스 소리가 잘 안들렸는데;; 자리가 3층이라서 잘 안들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3악장에서는 애매한 음정이 종종 들렸는데 오케스트라와 튜닝이 잘 안된 건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어쩌면 협연자가 너무 급하게 바뀌어서 독주자나 오케스트라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했는데... 레핀이 시벨리우스를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닐테고, 시향도 시벨리우스가 처음은 아닐 듯 했고 어차피 한곡당 연습시간이 원래 그다지 길지는 않을텐데... 컨디션이 별로인가... 언제 한국에 온걸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3악장을 들었다;;

앵콜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레핀은 옛날 KBS협연때와 마찬가지로 시향단원들에게 피치카토 반주를 부탁했다. 음... 같은 곡이구나하는 생각에 살짝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긴 했지만, 파가니니의 베니스의 카니발은 사실 언제 들어도 재미있는 곡인데다가 앵콜로의 효과도 매우 좋은 곡이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은 정말 언제 보아도 놀랍다;; 관객들의 박수에 두번째 앵콜을 시작했는데, 같은 곡의 또다른 변주였다. 나중에는 연주하면서 무대 뒤로 걸어들어가더라는...

앵콜도 같은 곡으로 하는 걸로 봐서 확실히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던 것 같긴 한데, 앵콜이야 그야말로 "덤"이고 박수에 대한 답례의 성격이니 같은 곡을 했다고 크게 실망할 성격은 아니 것 같다. 어쨌거나 그의 테크닉은 정말 놀라웠으니까.

인터미션 후의 말러 1번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다. 시벨리우스 때의 정명훈과 시향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데, 일단 곡이 시작되자 오케스트라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관객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냥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려는 모습이 보였는데 역시 정명훈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스트링은 워낙 원래 훌륭한 파트들이지만;; 그날의 목관 연주는 매우 좋았고 금관도 나쁘지 않았었다. 시향 연주를 자주 보지 않아서 언제부터 금관에 외국인들이 저렇게 많아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금관은 외국인 연주자의 숫자가 더 많은 것 같아 보였다. 사실 그간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금관 삑사리를 듣는 것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그날 나름대로 매끈한 연주를 들려 준 것은 외국인 연주자들 덕이 아니었을까.

하여간... 말러 1번은 대단했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시벨리우스와 대비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정말 정명훈의 시향은 많은 발전을 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특히 Jazzy한 느낌이 가득한 3악장 (솔직히 말하자만 트로트스러운;)이 그랬다. 4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나 관객의 몰입의 정도가 더 높아져서 피날레를 향해가면서 터져나오는 격정과 환희의 느낌이 잘 살아났었다.

곡이 끝나자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졌는데, 관객의 절반 정도는 기립박수를 쳤던 것 같다. 우리 관객들이 원래 박수에는 절대로 인색하지 않은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것을 보는 것은 확실히 흔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앵콜은 4악장 마지막 부분. 곡이 끝나고 나서의 연주여서인지 앵콜 연주가 더 시원시원하고 신나게 들렸다.

말러보다는 시벨리우스를, 정명훈과 시향보다는 레핀을 보러 간 연주였는데, 뜻밖에 꽤 만족스러운 말러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던 밤이었다. 사실 말러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정명훈의 말러를 한번 쭉 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공연이었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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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동호회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났고, 또 소규모 상영회도 하던 영화였는데, 얼마 전 드디어 개봉을 했다. 2007년 제작 영화이니 3년만에 한국의 개봉관에서 상영을 하게 된 것. 그래도 절대로 개봉관에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비록 아침시간과 심야시간 밖에는 상영을 하지 않기는 하지만) 멀쩡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좀 고마울 정도였다^^; 일요일 아침시간이었는데도 생각보다는 관객도 많았다. 거의 반은 찬 듯...

자동피아노가 흰 벽으로 되어 있는 빈 집 (그러나 전기아울렛이 있는 현대의 집)을 오가면서 골드베르크변주곡을 연주하면서 영화는 시작되었다. 영화 내내 롱테이크로 음악만을 들려 주면서 나오는 장면들이 꽤 있는데, 첫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고 스토리가 있지만 약간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가 아닐까 하고 막연히 추측하고 갔는데, 첫 장면은 좀 당황스러우면서도 흥미를 자극했다. 앞으로도 이 영화는 결코 만만하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


이어서 개를 끌고 노인 (아마도 맹인)이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아서 조율을 하는 장면이 이어졌는데, 음이 미묘하게 틀어졌다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는 과정이 또 길게 이어졌다. 왜 조율장면이 이렇게 길게 들어갔을까 생각해보다 이런 피아노의 조율법 자체가 바흐의 공헌이 상당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영화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



이어서 트럭운전을 하는 두 명의 남자가 휴게실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장면. 매우 일상적인 장면들이 아무 설명없이 진행되고, 대화가 이어지고 살짝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 사람들은 누굴까 호기심이 일기 시작하면 트럭은 출발하고 조수석에 타고 가는 초짜 트럭기사는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세상에나.... 리코더와 더불어 초등생들의 친구인, 하모니카라는 매우 친근한 악기와 허름하고 약간은 맹해 보이는 트럭기사 지망생이 만들어 내는 선율은 역시 바흐. 더구나 곡이 진행되면서 하모니카로 이런 다성부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다니 싶은 부분들이 나오는데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바흐가 등장했다. 오르가니스트인 크리스티안 브렘벡이 바흐로 나와 오르간을 연주하고 하프시코드도 연주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이제 본격적인 바흐의 이야기가 나오나 했는데... 카메라는 다시 현대로 돌아왔다. 어떤 노인이 꼼꼼히 단장을 하고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알고보니 그는 바흐로 분장을 하고 그의 생애와 업적을 설명하는 안내원인듯. 그리고 마치 그림처럼 바흐가 살았던 드레스덴의 장면들이 지나가며 관광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의 음성이 들린다. 어떻게 골드베르크변주곡이 작곡되었는가에 얽힌 이야기도 해주고...

(영화가 스토리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서 앞 뒤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이후 지하철 한 칸을 가득 메운 첼리스트들이 모두 같이 무반주모음곡 1번 프렐류드를 연주하는 장면, 연주가 끝나고 첼로를 손에 들고 계단을 오르는 뒷 모습도 이어졌다. 시끄러운 지하철의 소음에 프렐류드가 씩씩하게 (?) 연주되는 것도 상당히 묘한 느낌이 들었는데, 많은 첼리스트들이 무심하게 첼로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 빠져나가는 모습에서는 바흐가 현대의 젊은 첼리스트들과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바흐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프리드리히가 장난을 치고,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바흐는 식탁에서 악보를 보고, 아들을 가르치고, 또 본인도 연주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짧은 레슨. 안나 막달레나 바흐인 것으로 보이는 여인도 등장하고.


그리고 나온 에피소드는 멘델스존의 시대. 수다쟁이 푸줏간 주인이 고기를 싸는데 악보가 그려진 종이를 사용하고, 멘델스존의 하인이 고기의 피가 묻은 악보를 주인이게 가져다 준다. 그 악보가 바로 바흐의 마태수난곡이라는....;; 이런 내용의 노래가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의 가사를 바꾸어 흘러 나온다. (사실 이 부분은 좀 어색하면서 살짝 웃기기까지 하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스토리(?)가 있는 부분은, 어지러운 침대와 풍만한 여인이샤워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부분. 샤워 장면이 꽤 오래 나와서 이건 뭘까 싶었는데 그녀는 첼리스트. 악기판매상인 남자와 같이 대화하다가 그녀는 라이프치히로 연주여행을 간다고 나선다. 악기상인 남자는 처음에 나왔던 트럭기사에게 전화를 하는데, 그 트럭기사는 비오는 밤 모텔에서 바순으로 바흐를 연주 중. 악기상과 트럭기사가 악기사에 만나서 피아노 배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기사는 배달 예정인 골동품 피아노 (아마 벡스타인이었던듯) 로 또 바흐의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이 장면으로부터 수십명의 사람들이 각기 다 같은 곡을 마치 돌림노래처럼 (그러나 화성이 맞지는 않는다) 각기 다른 피아노로 연주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에 보여지는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악기상은 고서점에 들러서 서점 주인과 시오랑의 글과 바흐 이전의 침묵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눈다. 또, 음악이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라이프치히로 떠난다던 그 첼리스트는 남자동료와 함께 정말로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 교회에 나타난다. 바흐의 무덤에서 바흐의 후손이라는 여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시가를 피우고 있는 칸토르 빌러의 방으로 안내된다. (빌러가 진짜로 출연;;;) 빌러가 성토마스합창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둘을 식당으로 안내한다.


영화는 바흐의 마니피카트의 악보를 음악과 함께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성토마스합창단원들의 연주와, 승마 장면과 같이 나오던 곡, 또 마지막 부분에 다시 자동피아노 연주 등등 바흐의 음악은 계속해서 흘러 나온다. 간간히 음악은 없으면서 꽤 긴 시간을 차지하는 씬들도 나오는데, 감독의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흐의 후손이라는 여인이 손님들을 빌러의 사무실로 안내한 후 다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소파에 좀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앉아 있다가 음악이 나오고.. 다시 잠이 든 그 여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 또 음악이 흐르면서 피아노가 물에 떨어져 박살나는 장면. 그 이외에도 조금씩 위화감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영화를 한 번 더 보면 감독의 의도가 이해가 될지....?

이 영화에서는 뭔가 논리적인 흐름을 찾으려고 하면 절대 안될 것 같고, 단지 바흐의 음악과 현재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그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져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현대에 왔는지 그리고 현재도 계속 살아 숨쉬면서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을 그저 느낄 수 있을 뿐인 것 같다. 사실 무엇보다 강렬한 것은 이 영화의 제목인데, "바흐 이전의 침묵"이라니. 한 명의 음악가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사족. 며칠 전에 본 영화를 이토록 자세하게 기억하다니 정말 기억력이 좋구나라고 생각하실 분들께 - 스토리도 없는 영화를 기억할 수 있는 머리는 영 없어서 아래 링크된 글을 참조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의 제목을 쭉 적어주신 모 클래식 동호회의 어느 고수분의 글입니다. http://cafe.naver.com/gosnc/30714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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