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 위에 추가를 하자!

아래 글에서.. 아델라이데 협주곡의 진위도 역시 의심스럽게 여겨지고 있다고 하네요..


http://www.mozartforum.com/Lore/article.php?id=040&pt_sid=71f5cde08ba54f47d8f623fed00769ba


KV.Anh294a Adelaide Violin Concerto


Dennis Pajot

(이사람..위 주소의 모차르트포럼 사이트 운영자군요...^^)


아델라이데 협주곡은 1933년 Marius Casadesus에 의해 편집, 출판되어졌다. Jelly d'Aranyi가 런던에서 초연했다. (이 부분은... 좀 이상하군요. 메뉴인 연주가 1932년 녹음이라고 되어 있던뎅.....ㅡㅡ;;; 뭐가 맞는 건지 몰겠네요...) Casadesus에 의해 아델라이데로 명명되었는데, 그가 작업한 짧은 악보는 두 개의 보표 위에 서명이 있었고 - 위의 것은 독주부분 (D)에, 아래것은 베이스 (E)에 - 루이15세의 큰딸인 Adelaide de France부인에게 헌정되어졌다고 쓰여 있었으며 1766년 5월 26일, 베르사이유라고 되어 있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소위 서명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는데, 이것이 프랑스의 개인 소장품이라고 주장되어졌지만, 그 당시의 전문가들 (당시 뛰어난 모차르트 전문가인 Georges St.Foix를 포함하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또 다른 뛰어난 전문가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친척이긴 하나 다른 사람입니다^^;; 유명한 음악학자죠)는 그 서명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출판사인 Schott도 서명을 봤다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1934년 처음으로 이 작품의 근원을 분석했다. 그는 왜 이 협주곡이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1768년 작성한 그의 아들의 작품목록에 빠져있는지를 의문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또한 모차르트 일가가 1766년5월28일에 베르사이유에 도착하였고 (작품이 헌정되었다고 주장되는 날보다 2일 뒤이다) 6월1일에 파리로 돌아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왜 모차르트가 미완성된 작품을 헌정했는지도 질문했다. 그는 만약 볼프강이 "협주곡을 쓰길 원했다면, 그는 협주곡으로 썼을 것이지, 두 오선지로 쓰지 않았을 것이고, 모차르트는 총보를 다루는 일에 아주 익숙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 작품의 스타일이 모차르트 후기 작품으로 부터 나온 것 같다고 믿었다. 이러한 모든 증거들로 인하여 아인슈타인은 이 작품이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는 점을 의심했다. 그러나, 혹시 네델란드에서 스케치된 "변주곡"의 잃어버린 부분이며 나중에 파리로 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함으로서 약간의 가능성은 남겨놓았다.


10년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모차르트 책에서, 이 협주곡은 Casadesus의 크라이슬러 식의 신비화된 곡이라고 부드럽게 서술했다. (크라이슬러가 본인의 곡인데도 마치 예전 작곡가의 곡인 것처럼 하곤 했다는 군요. 그래서 Casadesus도 본인의 곡을 모차르트의 곡인 것 처럼 신비화 시켰을 수도 있다는 뜻인 것 같네요.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고클에 물어봤더니 어느 분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Friedrich Blume은 1956년에 이 헌정에 관한 문제의 해결점에 도달했다. 원고와 헌정사는 서로 전혀 관계가 없으면 우연히 같이 있게 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는 놀라운 이야기를 했는데 "그 근원을 알 수 없다면 그 작품과 서명 모두를 부인하는 것 보다는 가설을 세우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것.. 그리하여, Blume은, 1764년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1과 2에 있는 것과 비슷한 그 헌정사가.. 볼프강의 알려지지 않고 실종되었던 또 다른 작품에 대한 헌정사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도록 했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한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것보다는 "그 질문은 이제 별로 흥미 있는 것이 아니다"라도 말했다. !!!! Blume은 아델라이데 협주곡이 K207,  K211과 구조적으로 비슷하다고 보았고, 이 두 곡이 아델라이데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는1775년 4월과 7월 사이에 스케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고 믿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세계에서 이 곡을 밀고 있는 단 한 사람은 에후디 메뉴힌이었다. 그는 이 곡을 7번 협주곡과 같이 녹음했다. K6 (나중에 6번째로 다시 매겨진 쾨헬 번호)체계에서는 이 곡을 Anh C (Anhang, 쾨헬 목록의  appendix인데, 의심스럽운 작품들을 그 쪽으로 넣더군요) 섹션에 넣고 있으며, New Grove (음악백과사전)는 이 곡을 단순히 위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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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제가 번역하니 뭔말인지 종잡을 수가 없네요...ㅜㅜ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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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Auguste de Bériot

베리오는 19세기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1802. 2.20 - 1870. 4. 8)

뢰벤에서 태어났고, 비오티Viotti의 제자였던 쟝 프랑스와 티비Tiby와 같이 바이올린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비오티와 바이오Baillot와 함께 일했고, 또 파가니니의 영향도 받았다고 합니다. 베리오는 프랑스의 샤를 10세, 네덜란드 윌리엄왕의 궁정 바이올리니스트로도 일했구요. 유럽각지로 연주여행도 많이 다녔었답니다.

베리오는 9세에 비오티 협주곡을 대중들 앞에서 연주했었구요. 그의 부모가 1812년에 작고한 이후에는 선생인 쟝 프랑스와 티비의 후견하에 자랐습니다. 1824년 경에는 비르투오조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826년에 앞서 말한 것처럼 궁정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구요.

베리오는 오페라 가수인 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과 1829년 부터 같이 살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커플을 위해서 솔로 바이올린 반주의 아리아도 작곡해 주었다는 군요. 1836년 아내가 말에서 낙상하여 죽었구요 (임신했었답니다...). 베리오는 4년후에 독일로 가서 마리 후버와 재혼을 했답니다.

1842년에 바이오가 죽은 후, 바이오의 자리였던 파리음악원의 교수 자리가 베리오에게 주어지게 되었지만, 베리오가 거절했구요. 1843년에는 브뤼셀음악원의 바이올린 주임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가 된 후에는 연주는 줄이고, 실내악연주를 즐겼구요.

브뤼셀에서 베리오는 프랑코-벨기에 바이올린 학파를 창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852년 시력을 잃게 되어 은퇴하였구요. 1858년에는 완전히 실명을 하였습니다. 1866년에는 왼쪽팔의 마비가 와서 그의 바이올린 경력은 끝나게 되었구요. 그의 제자로는... 후버트 레오나르, 앙리 비외탕, 하인리히 빌헬름 언스트, Milanollo 자매가 있습니다.

그는 사실상 벨기에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대부였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분들 이외에도 Ysaÿe, Massart, Marsick, Prume, César Thomson 같은 사람들이 베리오 이후 벨기에 학파의 연주자들입니다.

베리오는 10개의 협주곡을 포함해서 바이올린 음악들은 꽤 많이 작곡했습니다. 최근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기는 하지만, 그의 교육적인 목적의 작곡들은 여전히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이 공부합니다. 그의 아들인 샤를-윌프리드는 그라나도스, 라벨을 가르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베리오는 68세의 나이로 1870년 뢰벤에서 죽었습니다.

Violin Concerto No. 9 in a minor, Op. 104

베리오의 바이올린 협주곡 9번은 1858년에 작곡되어졌다고 하고, 타트야나 유수포프 공주 Princess Tatyana Yusupov에게 바쳐졌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우정의 표시일뿐만 아니라 1859년 9월에 성 페테르스부르크에서 7개월을 보낼 수 있도록 초대하여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합니다. 6번과 7번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9번은 악장간에 쉬지 않고 3악장을 연달아 연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베리오가 바이올린곡을 쓰는 법을 보여주고, 오페라적인 우아함과 그의 연주를 특징짓는 스타일의 유려함을 보여줍니다.

협주곡 9번의 녹음은 Takako Nishizaki의 연주로 Naxos에 있구요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Zhakar Bron이 이 협주곡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DVD도 있다고 합니다만 역시,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밖에 Ella Susmanek 연주로 이 곡이 아이들을 위한 바이올린 곡집에 실려 있는 것도 봤습니다.


위의 정보는 위키피디아 및 낙소스의 해설에서 얻은 것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Charles-Auguste_de_Beriot
http://www.naxos.com/mainsite/blurbs_reviews.asp?item_code=8.555104&catNum=555104&filetype=About%20this%20Recording
&language=English

http://www.arkivmusic.com/classical/album.jsp?album_id=12581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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