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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는 봄 연주회 이름을 "뮤직 페스티벌"로 짓고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냥 봄 연주회라고 제목을 썼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고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대충대충 했었지만)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라고 느끼면서 열심히 레슨에 합주에 쫓아 다녔던 것이 한 2년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작년 가을연주회가 끝나고 한동안 좀 의욕상실이 되었었나 보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실력에 맞지 않게 어려운 곡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었고... (그래도 가을연주회까지는 재미있었지만^^) 지난 겨울에는 유난히 이리저리 힘이 들었었다. 오케스트라도 12월 한달은 쉬었었고,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면서 계속 했었던 그룹레슨도, 몸도 마음도 피곤해져서 그만두었고... 오케스트라 연습도 어떤 날은 가고 싶지 않아서 미적미적거리기도 하고...

그러니... 지진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집에서 개인연습도 거의 하지 않고 결국 연주회가 코 앞으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도무지 무슨 배짱인지... 연주회 전 목요일 연습 때에 지휘자 선생님의 얼굴이 영 어두워 보였다.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영 아닌 가보다. 마지막 연습날인 금요일도 앙상블이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고.. 전 곡 연주를 하다가 영 맞지 않아 중단되기도 했었다.

연주회 당일. 사실은 정말 "당일치기"로 아침에 일어나서 손가락이라도 좀 풀어 보려고 했으나.... 엊그제부터 심해진 알러지성 결막염으로 눈도 아프고 아침에 먹은 알러지약이 독한지 오전 내내 일어나지도 못하고 자고 말았다. 겨우 리허설 시간에 맞추어 도착해서 악기를 꺼내는데... 어찌 연주해야 할 지 참...

TVO내의 다른 오케스트라들이 먼저 연주하기 때문에 리허설 한 번을 마치고는 한참을 "관객"으로 앉아 연주를 감상했다. 윈드의 연주곡들은 클래식이 아니어서 관객들도 더 재미있어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면서... 2층에서 바라보니 객석에 아는 얼굴들도 보이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점심 사줘야 할 듯...;;)

우리 차례가 되어 무대에 나갔는데, 영 무대가 좁다. 더구나 우리 풀트의 자리가 갑자기 바뀌어서 졸지에 관과 타악기 사이에 위치하게 되고... (나 연습 안한 걸 알고 뒤로 쫓아낸 걸까...ㅡㅡ) 결국 연주 중에 타악기 보면대에 활이 계속 부딪히게 되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연주는 시작. 불안불안하게 1악장이 시작되었다. 빠른 패시지 중에 제대로 음을 맞게 연주한게 있었나 싶다...ㅠㅠ 1악장 종지는 신나게 끝나기는 하지만, 어쩐지 좀 불안하게 이어졌고... 1악장이 끝나자 (아마도 졸다 깬) 관객들은 엉겁결에 마구 박수를 치는 일도 발생...; 조금 뜸을 들이다가 이어진 2악장. 사실 2악장 연습을 거의 못했어서 였는지 나에게는 가장 자신 없는 부분이었다. 내 연주에 신경쓰면서 악보 따라가는데 급급해서... 전반적인 연주가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강 마무리는 된 듯..

3악장과 4악장은 정말 정신없이 연주를 했다. 3악장은 괜찮은 편이었던 것 같지만... 악상이 잘 표현되었던 것 같지는 않고, 전반적으로 그냥 크게만 연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무대 위에 올라가면 긴장이 되어서 작은 부분을 작게 연주하는 것을 잊나 보다. 그럭저럭 4악장까지 연주를 마치고... 예정대로 앵콜을 연주했다. 앵콜곡은 다양한 타악기들이 동원되었는데 타악기 소리에 묻혀서 내 귀에도 내 바이올린 소리가 잘 안들릴 정도였다. 음정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절대 모르겠다...ㅡㅡ;; 그래도 (우리 딸 말에 따르면) "대하드라마" 같은 앵콜곡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순전히 관과 타악기 덕분인듯...

연주를 마치고 먼데서 와준 분들에게 인사하고... 근처 식당에서 식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오빠들 집이 다 근처라서 바빠서 (또는 졸려서?) 연주회는 오지 못했지만 저녁 먹자니까 다들 와서 식당에서 기다라고 있었기 때문 ^^; 식사를 마치고는 뒷풀이에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밥을 먹고 나니 그냥 집에 가고 싶어져 버렸다. 눈도 따가워서 약을 더 넣어야 할 것 같고 먹는 약도 먹어야 하고... 무엇보다 1년 반을 같이했는데도 평소에 뒷풀이 같은 모임에 참석을 하지 않아서 인지, 오케스트라 사람들이 여전히 낯설고 좀 불편하다. (좀 친해지고는 싶은데... 막상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도 않으면서 어색해 지는 것 같다. 아마도 지난 가을 연주회때 뒷풀이에서 멀뚱히 앉아만 있다가 돌아온 기억 때문인 듯하다.) 또 술도 별로 먹고 싶지 않았고..

술을 먹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집에 오니 뭔가 허전하여 방금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맥주 한 캔을 마셨다. (맥주 한 캔도 "술"은 술이니까) 개인연습도 거의 못하고 참가한 연주회치고는 크게 실수 안하고 마친 편이긴 하지만, 다음 연주회에선 이러지 말고 연습도 좀 하고 그래야 할 텐데... 나름 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회사일에서도 스트레스가 쌓였고... 집에서도 이것 저것 일이 많았고, 도윤이가 입학하면서 나도 덩달아 바빠졌고... 하여간 이래저래 일이 많은 몇 달간이었기는 했다. 앞으로는 상황이 좀 나아지고, 또 새롭게 마음을 먹어 연습도 열심히 해서 가을 연주회때는 좀 뿌듯한 기분으로 후기를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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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지난 4월말, 5월부터 6개월이 넘게 연주회를 준비해온 셈이다. 일주일에 고작 2시간 연습을 했다고 하더라도... 뮤캠 등을 합치면 6-70시간을 연습한 것이니.... 정말 긴 시간이었다. 난 여전히 빠른 패시지를 얼버무리면서 연주를 했지만, 다행히 빵빵한 관들의 소리- 동원된 객원 금관들 포함 - 에 적절히 파묻혀서 무난히 (?) 넘어갔다.

연주회 전 연습들.

목요일 정기연습 이후에, 금요일 특별연습이 있었다. 회사에 또 누가와서 금요일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무사히 도망나왔다... 사실 그 지겨운 저녁식사를 하는 것보다는 오케연습이 100배는 재미있다. 금요일 밤 서울대입구역의 낯선 연습실에서 알 수 없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연습을 마쳤다. 저녁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동네는 10년전과는 도무지 같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많이 변해 있었다. 공룡같은 빌딩들이 어찌나 많이 들어서 있던지...

연습실에는 금관들이 가득 차 있었고, 팀파니와 심벌즈 하시는 분들도 와계셨다. 이거 사운드가 장난 아니겠는걸... 했는데... 브루흐의 로망스를 시작하고 나자...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소리가 퍼지고 흡수되어서 그런건지... 영 작고 자신없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이런.. 내일이 연주회인데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져 가긴 했고... 밤 시간이라 다들 지쳐 보이긴 했지만, 내일은 잘 되겠지 생각하면서 연습을 마쳤다. 10시반.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다음날 연주회 당일은 다행이 놀토라.. 지윤이가 학교를 안가니 늦잠을 잘 수 있었다. 2시에 장천아트홀에 도착. 3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리허설을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평소처럼 옷을 입고 화장도 안하고 갔는데...;; 다들 예쁘게 무대의상을 차려입고 왔다. 난 관객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인간이던가... 리허설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냥 한 번씩 곡을 쭉쭉 연주하고 끝이 났다. 사실 그 상황에서 뭘 더 연습해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파트별로 사진을 찍고 준비해 놓은 김밥과 과자로 배를 채웠다. 조금 수다를 떨다가 무대위의 내 자리로 돌아와 안되는 부분을 조금씩 연습했다. (결국 본 연주에선 안되는 부분은 계속 안되더라...ㅠㅠ)

관객들 입장을 위해서 무대 뒤로 들어갔고, 세컨파트만 모여서 튜닝을 했다. 모두 같게 한다고 한 분이 튜닝을 다 해 주셨는데...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 튜닝을 하는데 내 바욜의 e현 스트링에 작은 튜브가 끼워져 있는 걸 보고 튜닝을 해주던 분이 그거 없어도 된다고 얘길 한다. 헉.. 그거 없어서 브릿지 파였었는데 무슨 말을...;; 그냥 있어서 해놨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바이올린 실력이 모자라면 악기에 대한 상식도 모자란다고 선입견을 가지는 것 같아서 살짝 맘이 안좋아졌다 (어찌 소심한지...).

연주회.

6시가 되길 기다리다가 드디어 입장. 그리고는 연주.. 핀란디아는 그런대로 했는데, 브루흐는 몸이 좀 굳어 버렸다. 박자에 신경을 써서 그런가... 관객들이 앞에 앉아 있고, 가족들 아는 사람들이 저 앞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잡념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곡에 몰입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인터미션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심포니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4악장까지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즐겁게 연주했던 것 같다. 전반부에서도 그랬지만.. 트레몰로 부분들에서 사람들이 너무 크게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고...  군데 군데 리허설때 지휘자샘이 작게 연주하라고 했는데 너무 큰게 아닌가 싶은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연습할 때는 전혀 틀리지 않던 객원 트럼펫이 4악장 팡파레의 첫음에 멋지게 (!) 삑사리를 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니 나는 갑자기 긴장이 풀려서 4악장을 나름 즐겁게 연주할 수 있었다..ㅎㅎ 그리고 준비했던 슬라브 무곡을 앵콜로 연주.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지자 지휘자님이 갑자기 핀란디아를 다시 하겠다고 하신다. 연주가 끝났다고 생각했서 긴장을 풀었다가 다시 연주하려니... 처음에 했을 때 보다는 잘 되질 않았다. 역시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야 연주가 잘 되는 모양이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부분을 연주하고.... 드디어 연주회가 끝났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감이 안왔는데... 지휘자님의 표정을 보니 그런대로 잘 한 것 같다.

연주회를 마치고.

서로 수고 많이 했다고 격려의 인사를 하고, 1층으로 올라오니 알파님, 웰백님, 도우님과 정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꽃다발을 준비해 주신 알파님과 맛있는 쿠키를 가져다 주신 도우님... 와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ㅠㅠ 조금 서서 이야기 하다가 가족들을 만나러 나갔더니, 벌써 집에 가버렸다. 흑.. 이야기가 길어지는데다가, 날이 추워서 먼저 가버린 모양이었다. 오늘은 그간 연습 때 참석하지 못했던 뒷풀이를 꼭 가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간 식구들을 따라갈 수도 없고... 뒷풀이는 가야겠는데, 뒷풀이 장소도 잘 모르겠고 (내가 일찍 집에 간 날 안내문을 나눠 줬던 모양이다), 어찌 어찌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뒷풀이 장소로 향했다.

뒷풀이 장소에는 제일 첫 팀으로 도착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앉게 되었는데, 정말 어색했다. 6개월이 넘게 같이 연습을 했는데, 이름도 잘 모르고... 한쪽 편엔 일본인 단원들이 (국제적인 오케스트라다...) 앉았는데, 영어로 얘길 하면 끼어들기라도 하겠는데, 일본어로 얘기하고 간혹 한국말로 이야기 하니 역시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음식도 거의 1시간이 다되어서야 나오고. 저쪽은 모두들 시끌벅적 재미있는 분위기인데... 음.. 역시 평소에 뒷풀이를 안갔더니 적응이 어렵다. 그나마 얼굴을 아는 세컨바이올린 사람들도 어디 있는지 잘 안보이고... 차라리 식구들과 저녁이나 먹으러 가거나, 멀리서 오신 알파님들에게 식사나 대접하러 갈껄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때마침, 삼일 OB들이 전화를 해서 오라고 한다. 낼 모레 미국을 가는 동료가 있어서 가보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러저런 소감발표와 부상 수여가 끝나자 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뒷풀이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이런 연주회를 준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단원들의 도움도 별로 없이 혼자 여기저기 뛰면서 연주회를 준비했던 기획님, 총무님이 정말 수고를 많이 했다. 힘들었을 텐데 별로 내색도 안하고... 대단하다... 뒷풀이에서 소감으로, "오늘 지휘대로 연주해 주어서 감동했다"고 말씀하시던 지휘자님... 항상 참을성있게 (?) 밝은 얼굴로 이끌어 주시고... 정말 좋은 분이다...

Baby blues, postnatal blues 혹은 post performance blues

오랜 기간 준비했던 연주회도 끝나고 뭔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 동안 정리가 안된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다. 일요일까지도 정리되지 않은 기분에 아무 것도 안하고 종일 있었다. "포미니츠"라는 독일영화를 한 편 봤는데, 머리가 정리가 안되어서 그런지... 영화가 이해가 안되어 굉장히 졸렸다...ㅡㅡ; 오늘 아침에 회사로 출근을 하면서 조금씩 머리 속이 개이기 시작한다.

아마 연주회가 진행되는 동안, 그리고 뒷풀이에서, 왜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왜 오케스트라활동을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있던 답과 다른 생각들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그토록 머리가 어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는 나름대로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했었던 일인데 (일주일에 하룻저녁 시간을 꼬박 투자하는 일이 애가 둘인 직장인 아줌마에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주에서나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어서 내심 괴로왔을 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린을 시작한지 2년 반. 그 중에서도 최근 한 1년반 정도는 바이올린과 합주활동이 생활에서 우선 순위에 있었다. 회사일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고... 뭐.. 늘 그렇고... 저녁이나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도 많이 희생했다.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즐기고자 했던 음악이 혹시나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여 짐이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실 계속 던져왔던 질문인데... 연주회가 끝나면서부터 내 머리 속을 떠나질 않는다.

일단, 11월은 휴식이니까... 쉬는 시간들을 즐겨 보자. 다른 일들도 하고, 밀린 일들도 처리하고...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즐거운 음악시간이 돌아 오길 조용히 기다려 보자. Back to the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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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07년 11월 10일 (토요일), 늦은 6시

2. 장소 : 강남구 압구정동 광림교회 옆, 장천아트홀

3. 곡명 : Jean Sibelius Finlandia, Op. 26
             Max Bruch, Romance in F major for Viola and Orchestra, Op.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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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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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vorak, Symphony No. 8 in G Major Op.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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