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공연을 보러 갔더니... 영 뭘 보고 왔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후기를 쓰지 말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아예 아카무스 공연을 봤다는 사실까지 잊어 버릴까봐 적기로 했다. (지독한 건망증 때문에 내가 뭘했는지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꽤 많아서.....)
일단, 프로그램은 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관현악 모음곡 제1번 C장조, BWV.1066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BWV.1052 (하프시코드 협주곡 에서 복원한 원곡) - 미도리 자일러
-INTERMISSION-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C단조, BWV.1060 - 알프레도 베르나르디니 (오보에), 게오르크 칼바이트 (바이올린)
칸타타 "모든 나라에서 주님께 기뻐하며 감사하라", BWV.51 - 서예리
그리고 앵콜.
헨델의 오라토리오 <시간과 깨달음의 승리> 중 벨레차의 마지막 아리아 "Tu del ciel ministro eletto"
칸타타 51번 중 알렐루야
예상은 했었지만, 생각보다 관객이 많았다. 예상을 했던 이유는... 단체예매했던 좌석이 모두 1층 앞자리로 배정된 다른 공연들과는 달리 1층 뒷자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앉은 자리 앞쪽에 아주머니들이 단체 관람(?)을 오셨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좀 착잡한 마음이 되었었다. 나도 조금 더 나이 먹으면 저 아주머니들 정도 될텐데, 저렇게 친구들과 공연 보러 다니면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나이인데, 지금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건가 싶었기 때문.
그건 그렇고,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듣는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1번은 좋기는 했는데 그냥 그랬다. 집중력이 떨어지니 귀도 잘 안들리고..ㅡㅡ;; 잡생각이 오락가락해서... 신나는 한판의 춤곡들이 쭉 이어지고 끝이 난 후에 미도리 자일러가 등장하여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복원한 BWV 1052를 연주했다. 공연장이 건조한 탓인지 바이올린이 좀 위태위태해 보였고 매우 기교적인 부분이 많아서 인지 아주 인상적인 연주는 아니었다. 그래도 1악장 보다는 뒤로 갈수록 좋았다.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1060번은 오보에와 바이올린이 완벽한 조화를 이끌어 낸 명연이었다. 연주자들 모두가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었고, 칼바이트의 안정적인 바이올린과 명랑한 베르나르디니의 오보에가 홀을 축제 분위기로 이끌어갔다. 이어서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플정도로 반짝이는 가운을 입고 나온 서예리씨가 등장. (라식 수술의 후유증인지,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그렇게 반짝이는 것을 보면 눈이 너무 부시다. ㅠㅠ) 칸타타 51번을 불러 주었는데, 서예리씨보다는... 콘티뉴오를 이끌어가는 야프 테르 린던의 첼로가 무척 아름다왔다. 마지막의 화려한 코랄 알렐루야에서는 서예리씨의 목소리가 트럼펫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아 좀 아쉬웠다.
그리고 나서 이어진 앵콜곡은 서예리씨의 목소리의 아름다움이 아주 물씬 드러나는 서정적인 곡이었다. 바흐의 칸타타 보다 헨델의 아리아가 정말 훨씬 좋았다. 마지막 앵콜은 다시 알렐루야.
전반부 보다, 후반부가 더 좋았고, 앵콜도 정말 좋았지만.... 그날은 정말 음악에 몰두하기에는 너무나 머리가 복잡했다. 그다지 진지한 인생을 사는 편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심각하게 될 때가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