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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심해지기 시작한 감기몸살에 회사 탕비실에 있는 종합감기약으로 대충 때우고 있었더니 영 차도가 없었다. 재채기에 콧물까지 나서 연주회 동안 괜찮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공연이라 퇴근 후 예당으로 향했다.

차가 그다지 밀리지 않아서 여유있게 도착하고 표를 찾고 돌아서는데 아는 얼굴을 만났다. 고음악연주회에서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친구인데... 작년부터 첼로를 배우고 있는 친구가 첼로 동호회 사람들과 같이 온 것이었다. 모 악기사 겸 공방에서 초대권을 얻어서 왔다는데... 찾고 보니 무려 VIP..... 공연 소식을 듣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미리미리 할인받아서 겨우 A석을 구입했는데, 공연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지난 주에 우.연.히 악기사에 들렀다가 얻은 초대권이 VIP석이라니.. 갑자기 엄청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프로그램

G.Ph. Telemann Ouverture F-Dur TWV 55: F12
G.Fr. Handel 2 Arias from  "Alcina" HWV 34:
     "Ma quando tornerai"
     "Ah mio cor"
G.Ph. Telemann Concerto in D major TWV 54: D1

*** INTERVAL ***

W.Fr. Bach Sinfonia in D minor Falck 65
J.S. Bach Concerto in D minor BWV 1043 for 2 violins, Str and Basso Continuo
G.Fr. Handel 2 Arias from Giulio Cesare
    "Piangero la sorte mia"
    "Da tempeste il legno infranto"
J.D. Heinichen Concerto con corni da caccia in F major


공연 시작되기 전까지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주로 공짜 티켓을 구하고도 알려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이었지만..) 입장했다. 텔레만의 서곡과 아리아가 시작되었다. 경쾌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의 곡. 연주회 내내 지속되었던 맑고, 가볍고 투명한 느낌이 시작되었다. 연주자들은 음악에 맞추어 넘실거리고 있었고 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는 바이올린을 들고 그 경쾌한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전에 핀커스 주커만이 바이올린을 들고 시향을 지휘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는 맡은 역할이 "지휘"였기 때문인지 그다지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는데, 골츠는 딱히 "지휘"가 아니어서 인지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사실 자리는 지난 번 요한수난곡을 들었던 때와 비슷한 위치였는데, 음량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물론 그때는 성악이 주로였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또 이번에는 감기때문에 귀가 잘 안들렸을(?) 수도 있지만 인터미션 후에 '메뚜기'를 뛰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어 등장한 캐럴린 샘슨. 헨델의 '알치나' 중 두 곡의 아리아를 불러 주었다. 역시 기대했던 바대로 청아한 목소리로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 주었다. 특히 "아, 나의 마음이여"에서는 가슴이 떨릴 만큼 감동적이었다. 류트와 어우러지는 소프라노... 무척 아름다왔다.

두 명의 트라베르소가 등장하고, 텔레만의 협주곡이 이어졌다. 바이올린, 첼로, 두 대의 트라베르소가 독주악기들로 앞에서 연주. 서로 주고 받는 독주악기들의 솔로 패시지들도 좋았고, 4중주로 울려 퍼지는 가보트도 좋았다. 정말 "드레스덴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텔레만풍"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건... 텔레만의 드레스덴 시절 궁정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골츠의 바이올린에서는 홀로웨이의 연주회에서 생겨났던 고음의 삑사리가 종종 들려 나왔는데, 홀로웨이 연주회때 봤던지라...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듣는 나도 좀 안정이 되었고, 골츠나 다른 연주자들도 흐름을 놓치지는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트라베르소의 음정이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료 연주자들이 같이 있다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홀로웨이는 혼자서 무대에서 정말 고생스러웠을 듯 하다.
(이 곡의 마지막에는 재채기를 참느라 사실 정신이 좀 없었다. 콧물도 나고...ㅡㅜ)

 


(출처: 조선일보)

인터미션에 VIP석 주위에 빈자리가 많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C블럭, D블럭 14열인데 다른 열보다 앞 쪽 공간이 더 넓었다. VIP석이라서 그런가... 콘서트홀의 VIP석에 앉아 본 기억이 없어서...;

후반부 첫 곡은 요한 세바스찬이 끔찍히 아꼈다는 큰아들의 곡. 단조이기 때문인지 텔레만의 곡들 보다 호흡이 길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곡은 아버지 바흐의 BWV 1043. 골츠와 세컨 바이올린의 카트린 트뤼거가 나왔다. 바로크 바이올린 위에서 움직이는 가벼운 뾰족활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니 황홀하기 그지 없다. 예전의 타펠무지크의 연주보다는 정통적이라는 느낌. 독일 연주단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심지어 2악장에서도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아 맑고 투명한 느낌이 계속 되었다. (2악장은 아름답지만 간혹 "느끼"할수도 있는데 말이다.) 두 바이올린 독주자의 악기에서 가끔 고음의 잡음이 들려왔지만 음의 흐름이 무너지지는 않고 있었다.

다시 캐럴린 샘슨이 나오고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 중의 두 곡의 아리아가 울려 퍼졌다. 소프라노와 하프시코드의 레시타티보 후에 이어지는 아리아는 류트의 리드로 스트링 반주. 클레오파트라의 슬픔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절창. 두번째 곡은 밝은 곡이어서 큰 박수가 이어졌다. 샘슨은 목소리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기교도 나무랄 데가 없는 소프라노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잠시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가는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에 앵콜을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샘슨은 다시 나와 리날도 중의 울게하소서를 불러 주었다.

마지막 곡은 텔레만, 바흐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하이니헨의 곡. 코르노 다카치아 협주곡이라서 다시 호른 주자들이 나왔다.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밸브가 없는 악기로 어떻게 그렇게 연주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연주자들은 다시 넘실거리며 예당 콘서트홀의 무대를 드레스덴의 궁정으로 만들었다. 알라브레베에서의 피치카토 소리는 또 어찌나 맑던지... 전에 DVD에서 본 것처럼 쾨텐 궁정에서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 연주하듯 드레스덴 궁정에서 텔레만과 하이니헨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시종일관 경쾌하고 투명한 느낌의 멋진 연주가 끝나고 환호하는 객석을 위해 그들이 준비한 곡은 J.S.바흐의 관현악모음곡 중의 Air. 현들의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 그런데, 바이올린은 곡의 첫 시작의 온음표를 올림활로 하고 활의 아랫부분에서 짧은 16분음표를 연주했다. 밑활에서 저토록 가볍게 연주하다니... 바이올리니스트들의 가벼운 보잉에 다시 한번 감동... (곡 후반부는 기침 참느라 거의 집중을 못했다. 아.. 정말 괴로운 감기)

(덧글 1) 수요일이 연주회였는데, 목요일과 금요일 내내 회사 일로도 힘들고 감기 때문에 몸도 힘들고, 병원 잠깐 다녀올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오케스트라 연습도 물론 못 갔고... 고양에서 이어졌던 다음날 공연에는 슈클에서 무료초대권을 나눠 주었는데, 정말 시간과 마음의 여유만 있었다면 오케스트라를 땡땡이 치고 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둘 다 못갔지만..)

(덧글 2) 홀로웨이의 통영 공연은 대역전극이라고 할만큼 좋았다고 한다. 정말 습기가 문제였던가. 아니면 일단 최악의 상황을 경험해서 대비가 되었던 걸까. 통영 공연을 본 사람들이 부럽기 그지없다. (프라이부르크의 연주를 보면서 류트와 하프시코드, 베이스 그리고 첼로까지 저음부 악기가 받쳐 주는 든든함이 고음의 삑사리와 불안정함을 상쇄시키고 음악이 제 흐름을 되찾아 가는 데에 정말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덧글 3) 스트레스 절정의 한 주였다. 주말에 좀 쉬고 나면 다음 주는 괜찮아 졌으면... ㅠㅠ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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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회사에서 차로 5분정도 밖에 안걸리는 곳이라서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나니, '공연 전 10분 토크'를 할 것이라고 했다. 어제 홀로웨이를 만나 2시간을 인터뷰 했다는 노승림씨의 이야기를 잠시 듣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John Holloway


가벼운 복장으로 악기를 들고 홀로웨이가 무대로 나왔다. 작은 쿠션형 어깨받침이 달려 있는 바로크 바이올린에 악보가 그려져 있는 손수건을 받치고는 약간의 조율 후 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프로그램:

텔레만_판타지아 B flat 장조
바흐_소나타 1번 G단조
비버_묵주소나타 중 파사칼리아  
텔레만_판타지아 D장조
바흐_파르티타 2번 D단조

뭔가 불안하게 출발한 듯한 그의 텔레만 판타지아 연주였다. 가끔씩 들려오는 e현에서의 삑사리 때문에 음악에 몰입하기가 힘들어 졌다. 음색도, 저음부는 조금 풍부하게 느껴졌지만, 대체로 현과 악기의 울림은 거의 전해지지 못하곤 했다. 가냘픈 바이올린, 그것도 원래 음량이 작은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이 홀을 채우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곡이 끝나고 홀로웨이가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좀 상황이 나아졌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연주자가 다시 무대로 나왔다. 그는 두꺼운 종이에 바흐의 오리지널 악보를 붙여 놓은 악보책을 열고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연주가 이어졌다. 박자나 연주 자체에서 여유로움을 찾아 보기가 어려웠다. 홀로웨이가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프레스토 악장에서 그의 연주는 가볍게 들리지 못했다. 송진이 덜 칠하여지고 힘이 너무 들어간 보잉에서 나는 듯한 음색이 들려왔었다.

그리고 비버의 파사칼리아. 음반에서 처럼 안정된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미 나도 같이 불안해져 있어서 어떤 연주도 "안정된"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텔레만이나 바흐 1번때 보다 훨씬 잘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저음과 고음 성부가 확연히 음색이 대조되었고, 바로크 바이올린의 아름다움을 잘 느낄 수 있는 연주.

인터미션 후의 텔레만 판타지아 10번은 리듬감있는 밝고 아름다운 춤곡 풍의 곡이었다. 악보를 꼭 구해서 연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뒤로 나가지 않고 바로 진행된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전반부 보다는 조금 안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그까지는 .... 바흐가 태생적으로 단선율 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어떻게 여러 성부를 오가는 화성을 창조해 내고 있었는지를 감탄하게 만드는 연주가 이어졌다. 비록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의 챠코나. 음정이 엇나가거나 고음의 삑사리가 간혹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곡 후반부가 시작될 때까지는 곡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여린 거트현의 울림으로 들려오는 챠코나가 그 날 어찌 슬프게 들려던지...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해 세상을 떠난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한동안 슬픔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연주가 살짝 중단되었다. 1시간 반 여 동안 힘들게 연주하던 홀로웨이는 결국 한 부분을 놓치고 만 것이다. 본인도 놀라 약간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곧 다시 연주가 이어졌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연주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라 나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렇게 본 연주가 마무리되었다. 그가 앵콜을 한다면 오늘의 연주가 지금까지의 컨디션 난조 때문일 것이고 앵콜을 하지 않는다면 악기에 문제가 있슴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There is a lot more Bach... Largo from C major Sonata'라고 이야기 하면서 바흐의 오리지널 팩시밀리 악보를 한 장 넘겨서 앵콜을 해 주었다. 그것으로 더 이상의 앵콜은 없었다. 나는 평소처럼 싸인회는 패쓰...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길에서도, 그날 밤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왜 연주회가 엉망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연주해보거나 관리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것이 악기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연주자의 컨디션이 안좋아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홀이 넓어서 울림이 적은 것이야 각오했을 것이고... 더 넓은 예당 콘서트 홀에서도 - 비록 바이올린 독주는 아니더라도 - 고악기들이 무사히 잘 연주되곤 하는데 말이다. 요즘 계속 기분이 다운되었었는데, 연주회를 보고 나서도 그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아 (아니 좀 더 심화되는 것 같아) 영 편치가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홀이 지나치게 건조하여 거트현이 제대로 된 음색을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고... 홀로웨이가 상황에 맞추어 주법을 달리하다 보니 실수가 잦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은 "후기"를 쓸 만큼은 기분이 좀 나아지긴 했다..^^)

홀로웨이의 악기는 Ferdinando Gagliano의 1760년 악기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세컨 악기가 있다. 1700년 경 바이올린의 카피로 1997년에 젊은 스위스 제작자인 Christian Sager가 만든 악기가 그것이다 (2005 interview at Sunday Baroque). 홀로웨이는 미국 여행 중이었던 이 인터뷰에서 해외여행에는 갈리아노를 들고 다니지 않고 자거의 악기를 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 날 호암아트홀에서 고생했던 악기가 갈리아노인지 자거의 악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악기이건, 악기 자체 보다는 거트현이 더 말썽의 원인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웠던 마음이 커서 쓰다보니 너무 실망이었던 것처럼 쓰긴 했지만... 사실 부분부분 좋았던 연주도 있었고... 텔레만도, 비버도 좋았었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무대에서 혼자서, 악조건과 싸우면서 연주해 주었을 홀로웨이.... 오늘 통영에서는 만족스러운 연주가 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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