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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8 [공연] 스테판 재키브 바이올린 독주회 2009.12.17 15

 
작년 앙상블 디토에 참여했던 젊은 음악가들 중 스테판 재키브는 확실히 눈에 띄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올 봄 교향악 축제에 부천필과 협연을 했었는데, 나는 그날 예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다른 공연을 보고 있었다. 인터미션에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잠시 모니터로 봤는데, 부천필 공연을 예매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좀 들었었다.

하지만 이번 독주회 소식을 듣고도 예매를 망설였던건 공연장 분위기에 대한 우려에 표값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는데.... 고양에서 공연을 한 번 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에라 모르겠다하고 일단 예매를 했다. 그런데 그 후에 구로아트밸리에서 또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평일에 고양까지 가기가 엄두가 안났던 터라... 결국은 구로 공연을 보기로 결정했다. (그나저나 무슨 공연을 3일 연달아 그것도 서울권에서만...; 확실히 인기가 있는 연주자다.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좀처럼 그렇게 객석을 채우기가 어려운데 말이다. )
 
추운 날씨에 길도 막힐 것 같고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출발했는데도 역시 차는 살벌하게 밀린다. 더구나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근처에 공사하느라 길도 막혀있고 안내판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그 동네를 한참 헤맸다. A4용지 두장에 복사된 프로그램을 받아들고 조금 황당해 하기도 하고... 뭐 어쨌거나 프로그램은 공짜라서 그건 다행이랄까;;;;  구로구에서 기획을 한 것이라서 좀 어설픈가 보다 싶었다.

자리를 잡고 보니 어째 앞 뒤에 앉은 관객들이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베토벤 소나타 아다지오 악장에서 떠들어 대고...ㅠㅠ 문제는 내 주위 뿐만 아니었다. 베토벤 소나타 내내 악장간 박수가 우렁차게 이어졌는데 연주자들도 난감한 표정이고 나도 곡의 흐름이 방해받게 되어 좀 짜증이 났다. (원래는 악장간 박수에 별로 많이 짜증이 안나는 편인데 어제는 왠지 좀 화가 났다... 나이들수록 참을성이 부족해지는 듯...;) 2부 시작 전에 악장간 박수를 자제해 달라는 방송까지 나왔는데도 브람스 소나타에서도 여전히 몇 명은 개의치 않고 박수를....ㅠㅠ

그건 그렇고... 프로그램은

Brahms Scherzo c minor
Beethoven Sonata No. 7 in c minor
--intermission--

Chopin_Nocturne c# minor
Brahms_Violin sonata No.3 d minor Op.108


앵콜은 "마스네~ 메디테이션 프롬 타이스". 스테판 재키브가 큰 목소리로 곡 이름을 말했을때 관객들이 좀 미묘하게 웃었는데, 그 느낌이 마치 "어, 한국말 안하고 영어하네..? 또는 "목소리 또는 발음 이상하네?"라는 듯한 어이없는 듯한 웃음인 것 같아서 나로서는 좀 예의없게 느껴졌다. 미국사람이 영어하는게 이상한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그리고 유별난 민족에 대한 애증은 반만 한국피를 이어받은 미국인 스테판 재키브에게는 어쩌면 꽤 부담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론과 홍보사에서 피천득 선생을 들먹이는 것도 (나라면...)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울 듯... 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가의 외손자여서 브람스와 베토벤 소나타를 레퍼토리로 해도 서울에서 객석을 3번이나 가득 채우고, 국내에서 씨디를 많이 팔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자꾸 옆길로 새는 후기...;;;)

하지만 그의 연주는 좋았다. 그의 연주 뿐만 아니라 막스 레빈슨의 피아노도 매우 좋았다. 사실 최근에 본 두번의 바이올린 리사이틀에서 가장 맘에 걸렸던 부분이 피아노였는데... 피아니스트가 어떻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피아노가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곁들여져 있을 뿐 진정한 동반자로 듀오로 연주되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피아노는 그저 바이올린에 맞춰 주고 악보대로 연주하는 그런 파트로 작곡되진 않았을 터인데.... 하지만 스테판 재키브와 막스 레빈슨은 호흡이 잘 맞는, 서로를 보완하는 듀오로서의 연주를 들려줬다.

바이올린의 음색도 매우 훌륭했다. 재키브가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이전에 쓰던 키에제베터 스트라디바리는 지금 필립 퀸트가 계속 쓰고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1704년 빈센조 루지에리를 사용하는 것 같다. 원래 키에제베터 스트라디바리를 받기 이전부터 사용하던 악기로 들었는데, 스트라드를 반납하고 이 악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홀에서 악기 소리가 좀 작게 들리긴 했다. 음량이 큰 악기가 아니어서 그런 건지 구로 아트밸리의 음향 여건 때문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음색은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활을 매우 가볍게 쓰는 스타일인 것 같은데 그 때문일 수도 있을 듯 하다.

재키브의 음악에 대한 감수성은 분명히 그의 재능이 어떤 쪽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서정적인 표현은 브람스 소나타에서 특히 잘 드러났는데, 2악장의 연주는 정말 아름다왔다. 베토벤 7번도 매우 '베토벤'스러운 연주이면서도 슬프고 아름다운 연주여서 확실히 기대 이상이었다. (2악장에서 속삭이며 방해하는 이웃들만 없었어도...ㅠㅠ)

재키브는 주로 핑거비브라토를 사용하고 좀 더 임팩트가 큰 부분에서는 암비브라토를 아주 가끔씩만 사용했다. 또 프레이징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활을 기막히게 사용하여 곡을 부드럽게 연결하고, 매우 가볍게 잡고 있는 듯 했는데도 활끝까지 음색이 살아 있는 걸 보니 신기할 정도였다. 강렬하고 파워풀한 스타일의 연주는 전혀 아니었는데도 부드러움이 때때로 더 큰 효과를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활 좀 그만 눌러 써야지...) 그런데 어깨받침 없이 바이올린을 연주해서인지 자세는 매우 불편해 보였다. 저렇게 계속 연주해도 목이 안아플까 싶은 자세...

브람스와 베토벤 소나타는 둘 다 좋았는데, 쇼팽 녹턴과 앵콜이었던 명상곡에서는 조금씩 도드라지는 실수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모두 좋았고 서정적인 재키브와 잘 어울리는 곡들이긴 했지만 작은 실수 때문에 좀 안타까웠다. 15일에 입국해서 기자회견, 인터뷰가 잔뜩있었는데다 16일 공연에 이어 또 17일 공연... 쉴 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다고 추측 중...

특이하게 쇼팽 녹턴 c#단조와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은 최근 리사이틀에서 오주영씨도, 강주미씨도 연주했던 곡들이다. 본의 아니게 세 명의 연주를 아주 단기간 안에 듣게 되었는데... 세 명의 연주 스타일은 정말 전혀 다르다. 오주영씨는 특유의 열정적이고 강렬한 연주 스타일이 극도로 서정적인 이 곡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연주였고, 강주미씨의 연주는 악보대로, 차분한 스타일. 들으면서 악보를 그릴 수도 있을 정도.... 재키브는 매우 부드럽고 감정이 풍부한 연주였다. 아주 젊은 연주자임에도 본인의 세계와 자기가 꿈꾸는 감성의 세계가 존재하는 듯 한 느낌이랄까.
 
고양에선 생상도 했다는데.... 구로에서는 앵콜도 딱 한 곡만 하고 손을 흔들면 들어갔다. 아무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 예당에서의 연주는 어떨지 컨디션을 회복했을지 좀 궁금하다. 아무래도 무리하는 스케줄이 아닌가 싶기도....

어쨌거나 스테판 재키브는 요즘 한국팬들에게 큰 사랑 (과 조금 과도한 호기심)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앞날이 기대되는 연주자임에 틀림없다. 곡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타고난 감수성은 테크닉보다도 더 큰 그의 재능인 것 같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치고 요즘 테크닉이 딸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듯 하지만 그 나이에 무대에서 곡을 그만큼 소화해서 연주하는 사람도 또 별로 없는 듯 해서 말이다.
Posted by 슈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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